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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 필리핀 뒤센 성녀는 1769년 8월 29일 프랑스의 유서 깊은 도시 그르노블에서 태어났다. 일곱 딸들 중 둘째로 태어나 당시 신대륙 아메리카의 최초의 성녀인 리마의 로사와 사도 필립보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아버지 피에르 프랑수아 뒤센Pierre Francois Duchesne은 저명한 변호사였고, 어머니 로즈 유프로신 페리에Rose-Euphrosine Perier는 프랑스에서 존경받는 유력한 가문의 딸이었다. 어머니 로즈 페리에와 남매인 클라우드 페리에는 훗날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는 데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었고, 클라우드의 아들 카지미르는 프랑스의 수상이 되었으며, 클라우드의 손자인 장 카지미르 페리에는 프랑스의 대통령이 되었다.
 

프랑스 대혁명의 소용돌이

1781년 로사 필리핀 뒤센 성녀는 사촌 요세피나와 함께 성 마리아 방문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과정에 따라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집에서 가까운 그곳을 드나들면서 수도자와 수도생활에 눈길이 가고 마음도 움직였다. 그리하여 결혼생활을 주장하던 부모의 강력한 반대를 이기고 성 마리아 방문 수녀회에 입회했다. 1788년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듬해 프랑스 전역이 대혁명의 불길에 휩싸였다. 교회도 수도원도 그 불길을 피하지 못했으며, 수많은 성직자와 수도자가 희생되었다. 뒤센 수녀가 살던 수녀원도 강제로 폐쇄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뒤센은 병자들을 방문하고 고통을 겪는 이들을 돌보며 수도자로서의 삶을 이어나갔다. 수감된 성직자들을 찾아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위로와 도움도 주었다.
  1801년 대혁명의 소용돌이가 가라앉고 교회의 삶도 다시 시작되자 뒤센 수녀는 자신이 살았던 성 마리아 방문 수녀회로 돌아왔다. 예전의 모습을 재건하려고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던 중 마들렌 소피 바라Magdalena Sophia Barat 수녀(1779-1865년, 축일 5월 25일)를 만났다. 마들렌 수녀는 예수회의 조제프 바랭Joseph Varin 신부의 도움을 받아 1800년 11월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에 동료 세 명과 함께 예수 성심께 서원함으로써 성심 수녀회Society of the Sacred Heart를 그때 막 시작한 상황이었다.
  뒤센 수녀는 마들렌 수녀에게 수녀원 재건을 위한 도움을 청했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오히려 마들렌 수녀는 뒤센 수녀의 열정과 용기에 감명받아 그녀를 성심 수녀회로 초대했다. 성심 수녀회는 예수 성심의 무한한 사랑에 보답하고 그 사랑을 널리 알리는 것을 근본정신으로 한다. 그 결과 1804년 12월 31일 로사 필리핀 뒤센 수녀는 성심 수녀회의 회원으로 서원을 했다.

선교에 대한 오랜 열망

로사 필리핀 뒤센 수녀가 어릴 때부터 가진 꿈이 있었다. 신대륙 미국에서 원주민들에게 주님을 전하고 싶었다.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선교하는 사제들에게서 선교에 관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17세기 아메리카를 개척하던 프랑스인들이 미시시피 강에 둘러싸인 모든 대지를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의 속국으로 주장하면서 ‘루이지안Louisiane’이라고 불렀으며, 루이지애나는 프랑스의 속령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해 성목요일 밤 성체조배 중에 뒤센 수녀는 그동안의 열망에 대한 응답을 얻는 듯한 영적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것을 마들렌 소피 바라 원장 수녀에게 적어 보냈다.
  “저는 밤새 신대륙에 있었습니다. … 곳곳에 거룩한 성사를 전하면서 … 저는 모든 이들에게 할 수 있는 모든 희생을 바쳤습니다. 수녀님께서 저더러 ‘지금 당신을 파견합니다.’라고 하시면, 저는 그 즉시 ‘제가 가겠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뒤센 수녀의 꿈이 실현되는 데는 그로부터 12년이 걸렸다. 12년이 흐른 그날 편지 한 장이 도착했는데, 미국 루이지애나의 뒤브르 주교가 프랑스의 성심 수녀원에 보낸 편지였다. 편지를 읽고 뒤센 수녀는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하며 감동과 감사의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올린 기도가 드디어 실현되려는 순간이었다. 쉰 살의 나이에!

아메리카를 향하여, 아메리카에서

1818년 로사 필리핀 뒤센 수녀는 동료 수녀 네 명과 함께 지구 반대편에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6개월에 걸친 긴 여정이었다. 대서양이라는 넓디넓은 바다를 건너는 것은 위험이 늘 도사리는 일이지만 뒤센 수녀는 오직 기도로써 그 힘든 여정을 견뎠다.
  뒤센 수녀와 일행은 미주리 주에서 가장 외딴 마을인 세인트 찰스에 정착했다. 영어를 배우며 인디언들을 위한 학교와 고아원 그리고 미국에서의 첫 번째 성심 수녀회를 세웠다. 하지만 미국의 드넓은 땅에서 삶은 녹록지 않았다. 식량이 부족해 굶기를 밥 먹듯이 했으며, 갖가지 전염병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영어를 할 수 없으니 언어로 인한 장벽도 높았다. 그런 중에 뒤센 수녀가 깨달은 것이 있는데, 이 신생 대륙에 세워진 교회와 거기서 선교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필요한 것은 희생이라는 것이다. 뒤센 수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는 가난이 있고 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웅적인 삶이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수많은 시련들이야말로 이 땅에서 사목하는 성직자들에게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고귀한 자산입니다.”
  뒤센 수녀와 일행은 이듬해에 세인트 루이스에도 진출했다. 미주리 주의 가장 대도시에서 예수 성심의 사랑을 전하고 구체화시켰다. 1828년경에는 미시시피강을 따라 여섯 개의 분원이 있을 정도로 성심 수녀회는 미국에서 크게 성장했다.

“항상 기도하는 여인”

신대륙에 발을 디딘 지 20여 년이 지난 1840년 로사 필리핀 뒤센 수녀는 미국 지부장직을 사임했다. 이듬해에 예수회는 캔자스 동부의 인디언 포타와토미Potawatomi 부족을 위한 새로운 선교사업을 시작하면서 성심 수녀회도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그때 일흔한 살의 뒤센 수녀는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직접적인 활동에 합류할 수 없었는데, 예수회의 베레건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뒤센 수녀님은 일은 많이 하지 못하지만, 우리를 위해 기도해줌으로써 선교를 성공시킬 겁니다. 수녀님의 존재 자체로 우리 일에 하늘의 도움을 끌어올 겁니다.”
  이 말대로 뒤센 수녀는 기도로써 자신의 몫을 다했다. 인디언들의 언어를 몰라 대화가 어려웠고 건강 때문에 직접적인 참여도 허락되지 않았지만 함께 있는 자체로 선교사업에서 자신의 몫을 다했다. 늘 기도와 묵상에 잠긴 이방인 수녀의 모습은 인디언들에게 강한 인상과 영향을 주었다. 인디언들은 뒤센 수녀를 “Quahkahkanumad”라고 부르며 존경했다. ‘항상 기도하는 여인’이란 의미이다.
  그러나 인디언들과의 삶은 불과 1년밖에 허락되지 않았다. 뒤센 수녀는 건강이 나빠져 다시 세인트 찰스로 돌아와 기도하며 보내다가 1852년 11월 18일 주님의 품에 안겼다. 83년간의 거룩한 삶을 마감한 뒤센 수녀는 수녀원 묘지에 묻혔다가 3년 뒤 완성된, 그 거룩한 삶을 기리기 위한 성당에 안치되었다.
  뒤센 수녀의 시복을 위한 과정에서 1940년 무덤을 열었는데 90년 전에 매장된 모습 그대로, 전혀 부패하지 않은 상태였다. 로사 필리핀 뒤센 수녀는 1940년 5월 12일 시복되었고, 1988년 7월 3일 성인품에 올랐다. 축일은 11월 18일이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로사 필리핀 뒤센 수녀를 성인의 품에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뒤센 성인의 전 생애는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완전히 변화되었고 믿음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성체 앞에서 오랜 시간 동안 묵상하고 기도하는 동안 성녀는 끊임없이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 뒤센 원장이 가난한 사람들과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전적으로 선택하고 그들을 위해 헌신한 것은 성녀가 몸담고 있던 성심 수도회는 물론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수도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매우 역동적인 원천이 되었습니다. … 그 어떤 사람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성녀의 탁월한 모범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제자들에게, 특히 저개발 지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줍니다. … 위대한 개척자인 수녀님은 선교사로서 탁월한 용덕을 갖추고 하느님 사랑의 불길에서 타오르는 사랑의 눈길로 미래를 내다보면서 일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