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지 소개이번호 보기지난호 보기
예수님 성화성모님 성화성인 성화천사 성화
CD, TAPE스카풀라
출판사 소개찾아오시는 길도서 목록도서 구입처
주문 및 문의묻고 답하기
성모님의 발현성모님에 관한 교리성인의 생애와 사명가톨릭 정보
기도서영성, 신심
     
   
 
 
 
 
   
 

성 로코, 이탈리아 바리 미술관 소장.

전염병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을 돌보는, 병약한 이들을 돌보는 수호성인인 로코Roch는 1295년 마요르카Majorca 왕국의 몽펠리에Montpellier(현재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 도시)에서 태어났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몽펠리에의 시장이었다. 로코는 부모가 오랜 기도 끝에 얻은 아들이었고, 그런 표징이라도 보여주듯이 가슴에 붉은 십자가점을 지니고 태어났다.
  신앙심 깊은 그의 부모는 기도의 힘으로 얻은 아들인 만큼 신앙교육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그런 영향인지 로코는 어머니가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할 때마다 그대로 따라할 정도로 어릴 때부터 신실했다고 한다. 하지만 로코가 스무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이내 어머니마저 여의었다.

흑사병이 창궐하는 로마로!

로코는 부모의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세상의 재물이 아니라 천상의 보화에 더 기울어졌다. 그는 그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러곤 보잘것없는 옷 하나만 걸친 채 길을 나섰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 21)
  예수님의 이 말씀을 그대로 행하고 그가 처음 향한 곳은 이탈리아의 로마였다. 당시 이탈리아 곳곳은 전쟁 중이었고, 더욱이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많은 이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페스트)은, 유입 경로는 여러 가설이 있지만, 로코 성인 생전부터 유럽에서 조금씩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1340년대 후반부터는 유럽을 완전히 초토화시켜 유럽 인구의 1/3을 희생시켰다.
  그가 로마에 도착했을 때 병원은 물론이요 곳곳에 환자들이 넘쳐났다. 전쟁으로 인한 혼란도 그에 못지않았다.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이탈리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흑사병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고, 전쟁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도 기꺼이 자신을 내주었다.
  그는 환자들에게 다가가 아픈 부위에 손을 얹고 기도해주었다. 그런데 아픔이 사라지거나 완쾌되는 기적이 때때로 일어나면서 그의 치유 은사를 받으러 많은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흑사병 환자가 되어!

프랑스 파리에 있는 성 로코 성당Église Saint-Roch

로코 성인의 시신이 묻혀 있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성 로코 성당. 이탈리아 곳곳에 로코 성인에게 봉헌된 성당이 있다.

로코도 흑사병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러자 그는 더 이상 사람들을 도울 수 없었고, 사람들은 그런 그를 멀리하고 당시 그가 머물던 피아첸차에서 쫓아내며 매몰차게 등을 돌렸다. 그는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
  그는 인적이 드문 숲으로 들어갔으며, 거기 있는 우물로 끼니를 이어갔다. 다리를 심하게 다쳤고, 허벅지에 생긴 구멍에서는 고름이 흘러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갓 구운 빵을 입에 문 개가 그에게 나타났다. 그 일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매일 계속되었다.
  그러자 그 개의 주인인 고타르 백작은 매일 빵을 물고 숲으로 사라지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어느 날엔 그 뒤를 따라갔다가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남루하기 그지없는 남자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백작은 그 신기한 상황에 감화를 받고 로코가 회복될 때까지 돌봐주었다. 이런 이유로 로코 성인을 표현한 그림에는 늘 개가 등장한다.
  로코는 거짓말처럼 건강이 회복되어 고향 몽펠리에로 돌아갔다. 하지만 고향 사람들 그 누구도 전직 시장의 아들인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당시 전쟁 중이던 이웃 나라에서 순례자로 변장해 보낸 스파이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오명을 썼다. 그는 자신의 신분도 밝히지 않고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서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감옥에서 지낸 지 5년 만에 그는 숨을 거두었다. 1327년이다.
  로코의 시신을 수습하던 중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그가 전직 시장의 아들이고 현직 시장의 조카임을 알아보았다. 그의 가슴에 있는 붉은 십자가점을 보고서 ….
  로코 성인은 공식적으로 시성되지는 않았지만, 여러 교황이 그에 대한 공경을 인정했다. 교황 그레고리오 14세(1590-1591년 재위)는 로마 가톨릭 순교록에 로코 성인의 이름을 올리고 8월 16일을 축일로 지정했다.
  생전 행적에 따라 로코 성인은 전염병 환자, 외과의사, 병약한 사람, 부당하게 기소된 사람, 가난한 사람, 순례자, 여행자의 수호성인이다. 이탈리아 곳곳에 로코 성인의 성상이나 성화가 있는데, 지팡이를 든 순례자 모습의 그 옆에 개 한 마리가 있다. 로코 성인의 왼쪽 허벅지에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고 뱀처럼 굵은 고름이 거기서 흘러나오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그가 생전에 겪은 고통을 보여준다.
  로코 성인은 이탈리아에서는 로코Rocco, 스페인권에서는 로케Roque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