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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의 발현성모님에 관한 교리성인의 생애와 사명가톨릭 정보
기도서영성, 신심
     
   
 
 
 
 
   
 

목에 가시가 걸린 소년을 두 개의 초로써 치유한 기적으로 유명한 블라시오Blasius 성인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교회에 대한 로마제국의 박해가 심하던 시기였기에 기록보다는 구전으로 전해졌다. 그러다가 9세기에 로마의 성 클레멘스 성당에서 성 블라시오의 전설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 발견되었다.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쓴 그 기록에 따르면, “블라시오는 부유한 귀족 그리스도교 신자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주교로 서품 받았을 때는 매우 젊었다.”
  이 기록대로, 그는 성덕이 뛰어났던지 신자들의 요청에 의해 아주 젊은 나이에 주교가 되었다. 아르메니아(지금의 터키, 이란, 조지아,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맞대는 지역)의 북부 지역인 세바스테의 주교가 되었다. 하지만 박해가 극심하던 상황에서 주교직은 결코 영예로운 직이 아니었다.

세상을 밝히는 성덕의 등불

한스 멤링, 성 블라시오, 1491년, 205x75cm, 독일 뤼벡 미술관. 블라시오 성인의 상징은 주교 복장, 촛불, 금속 빗, 돼지이다. 어느 가난한 여인이 기르던 돼지를 늑대가 집어삼키려하자 블라시오 성인이 늑대를 설득해 돼지를 구했다는 일화가 있다.

순교자 시대의 주교는 화려한 성당이 아닌 산의 동굴이 주교좌성당이며 거처였다. 블라시오 주교도 예외가 아니어서 산속 동굴에 들어가 은수생활을 하였다. 당시 동로마제국 황제 리치니우스(308-324년 재위)에 의해 그리스도교에 가해진 박해의 칼끝은 변방 세바스테 지역에서도 무뎌지지 않았다. 그러니 드러내놓고 성사를 행할 수도, 전교를 할 수도, 신자들과 만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신자들과의, 세상과의 물리적 거리는 떨어졌지만 만물을 주재하시는 하느님과의 영적 거리는 더 좁혀지고 더 깊어졌는가보다. 블라시오 주교의 성덕의 “등불”(마태 5, 15)은 산 아래의 신자들을 불러들였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마태 5, 14)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많은 신자들이 블라시오 주교를 찾아와 성사를 청했고, 영혼을 열었으며, 함께 주님을 찬양했다.
  어느 날엔 한 부인이 목에 생선뼈가 걸려 죽을 위험에 처한 아들을 데려와 치료해주기를 청했는데, 블라시오 주교가 그 아들의 목에 손을 대고 기도하자 즉시 나았다고 한다. 그러자 그 부인은 그가 감옥에 갇혀 처형될 때까지 거처와 감옥으로 음식과 초를 늘 가져다주었다. 블라시오 성인이 목이 아픈 이들(인후병)의 수호성인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동굴로 찾아온 야생동물들도 보살피며 축복해주고, 상처와 병을 치료해주고, 자신이 축복한 물을 병든 짐승들에게 먹였다고 한다. 박해를 피하여 숨어든 동굴이니 주변에 맹수들이 많았을 터인데, 그는 야생의 피조물들에게도 주님의 대리자답게 사랑을 베풀었다. 이런 까닭으로 블라시오 주교는 야생동물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이제야 천국이 가까워졌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짐승들까지 모여들면서 박해자들의 눈에 띄게 되었다. 당시 아르메니아의 총독 아그리콜라우스는 자신의 임명권자인 리디니오의 환심을 사려고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 강도를 높이고 있었다. 이미 313년에 서로마의 콘스탄티누스와 동로마의 리치니우스가 함께 밀라노 칙령을 통하여 종교의 자유를 선포했는데도 불구하고 ….
  라틴어 성인전에 따르면, 동굴에서 숨어 지내던 블라시오 주교는 결국 사냥꾼들에게 발각돼 체포되었다. 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이 자유롭던 316년 어느 날에! 산에서 감옥으로 가는 험한 길에 많은 신자들이 애통해하며 주교의 안위를 걱정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블라시오 주교의 축복을 청했다고 한다.

목에 가시가 걸린 아들을 살려준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블라시오 성인에게 초를 가져다준 그 부인 덕분에 블라시오 성인 축일에는 초 두 자루로써 인후(목)를 축복하는 예절이 행해진다.

  블라시오 주교는 감옥에서 갖은 고문을 당했지만 굴하지 않았다. 양털을 다듬을 때 쓰는 강철로 만든 소모기梳毛機로 고문을 받고는 참수되었다. 316년 2월 3일이었다. “이제야 천국이 가까워졌습니다. 지상의 모든 것은 무서워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블라시오 성인에 대한 공경은 6세기 동방교회에서부터 시작되어 9세기경부터는 서방교회에서 인후병의 수호성인으로 공경 받았다. 그 후 십자군에 의해 서방교회에 더욱 널리 전파되었으며, 11-12세기부터는 특히 독일에서 그에 대한 공경이 널리 퍼졌다. 14-16세기의 독일에서는 출혈과 궤양으로 고통 받을 때에도 블라시오 성인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때문에 독일에서 특별히 공경 받는 ‘14명의 구급 전구자’ 성인 중 한 분이다.
  아들의 치유에 대한 고마움으로 블라시오 성인에게 초를 가져다준 그 부인 덕분에 블라시오 성인 축일에는 초 두 자루로써 인후(목)를 축복하는 예절이 행해진다. 사제가 두 개의 축복한 초를 성 안드레아 십자가(X자) 형태로 쥐고 목 가까이 댄 후 이 기도로써 축복한다. “성 블라시오 주교 순교자의 전구로 주님께서 당신 목의 모든 병과 다른 모든 질병으로부터 치유해주시고 보호해주시기를 빕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블라시오 성인의 축일은 서방교회에서는 2월 3일, 동방교회에서는 2월 11일이다. 인후병 환자, 이비인후과 의사, 야생동물, 양털을 빗기는 사람, 돼지 치는 사람의 수호성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