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마리아 출판사

“고통으로 우는 사람”이라는 이름의 리드비나Lydwina 성녀는 1380년 주님 수난 성지주일에 네덜란드의 스히담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노동자인 아버지는 매우 신실한 신앙인이었으며, 어머니는 가난한 귀족 출신이었고 리드비나를 포함하여 여덟 남매를 두었다.
리드비나는 천성은 온순했으나 나이에 비해 조숙하고 영리했기에 열두 살 무렵부터 청혼이 들어왔다. 성장해가면서 그녀를 탐내는 이들이 더 많아졌지만 리드비나의 마음을 차지한 유일한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뿐이었다. 리드비나는 그 유일한 신랑에게 자신의 동정을 오롯이 바치기로 결심하였고,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홀로 바쳤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서약을 지켰다.

스케이트 사고

1395년 스케이트 사고

열다섯 살이던 1395년 추운 겨울 그날, 리드비나는 친구들과 함께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놀고 있었다. 한참 놀던 중 그녀에게 다가오는 친구와 부딪혀 미끄러지면서 오른쪽 갈비뼈가 부러지는 큰 사고를 당했다. 집으로 옮겨졌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누워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차츰 상처 부위에 고름이 차면서 곪아 터졌다. 꼼짝없이 누워 지내면서 몸에는 욕창이 생겨 살이 썩어갔고 얼굴과 온몸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이마에서 아래턱까지 상처로 뒤덮였다.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에 자극이 가해지면서 날카로운 고통을 일으켰고, 멈추지 않는 고통은 치통과 두통으로 이어졌다. 그때는 이미 치료시기를 놓쳐 그 어떤 방법도 말을 듣지 않았다.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왼손과 몸의 왼쪽 부위 일부를 제외한 온몸이 마비되었다. 왼손만 겨우 움직일 수 있을 뿐이었다. 입과 귀와 코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피가 흘러나왔다. 시력마저 약해지면서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리드비나의 몸은 악취를 풍기는 농양으로 뒤덮였다. 심지어 종기에서 구더기가 기어 나오기도 했다. 오른팔은 썩어 문드러지다 못해 힘줄 하나로 몸과 팔을 연결해주고 있어 마치 몸이 두 쪽 난 것처럼 보였다.

고통으로 우는 사람

열다섯 살 때는, 사고 초기에는 그래도 치유에 대한 희망이 있었고, 3년간은 매일은 아니어도 가끔은 남의 도움을 받아 성당의 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고 햇수가 더해가면서 그마저도 불가능하게 되자 점차 절망감과 외로움과 고통이 리드비나를 짓눌렀다. 건강한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힘겨운 나날이었다. 그래서 때때로 울었다. 절절하게 울부짖었다. “고통으로 우는 사람”이란 의미의 이름 리드비나Lydwina, 이름 그대로의 삶이 그녀를 몰아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증상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완쾌의 희망은 완전히 멀어져갔다. 무섭게 오르는 열마저 리드비나를 시시때때로 괴롭혔다. 잠을 이룰 수 없음은 당연했고 음식을 넘길 수도 없게 되면서 19년간은 물만으로 그리고 성체만으로 생명을 이어갔다. 생의 말년에는 시력마저 잃고 말았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채 그렇게 30여 년을 보냈다.
스케이트 사고에서 비롯된 이 비극적인 병세는 당시 네덜란드 전역에 전해질 정도였다. 윌리엄 6세 공작이 의사를 보내주어 진료를 받도록 배려했지만 그마저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고통 위에 쏟아지는 은총

더할 수 없을 지경의 고통 속에 함몰된 리드비나에게 고해신부는, 예수님의 고통을 묵상하면서 위로를 받으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 조언은 고통에 짓눌린 소녀에게 반항심만 일으켰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소녀가 성년이 되어가면서, 리드비나의 영혼 안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자리도 커져갔다.
고통 속에 함몰되어 있는 가운데 리드비나는 예수님께 조금씩 다가갔다. 예수님께 자신의 고통을 바치고, 자신에게 그 무자비한 고통을 허락하신 까닭을 여쭈었다.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리드비나의 영혼에 차츰 각인되어갔다. 자신의 고통을 그분께 바치고, 그분의 고통을 자신의 영혼에 받아들이게 되었다.
마침내 자신이 겪는 고통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고통을 열망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시듯 리드비나도 자신의 고통을 세상 사람들의 죄를 보속하는 제물로 바쳤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은 인간의 구원을 위한 고통이라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온몸으로, 온 영혼으로 깨닫게 되면서 예수님의 고통을 나누어 갖기를 열망하게 되었다. 고통이 기쁨이 되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도 리드비나에게 당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셨다. 당신의 능력을 리드비나를 통하여 드러내셨고 보여주셨다! 이 세상에 계실 때 하신 이 말씀이 리드비나에게 그대로 이루어졌다.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마르 16, 17-18)
리드비나는 병자를 낫게 하였고, 예언도 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천국과 연옥을 조금 보여주시며 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셨고, 성인들이 그녀를 방문하였다. 비록 육신은 꼼짝달싹도 할 수 없이, 시력마저도 잃고 병상에 매여 있어도 영혼은 천국의 기쁨을 미리 맛볼 정도로 맑고 순결한 리드비나를 세상도 알아보았다. 점차 많은 사람들이 리드비나의 병상을 찾아들었고 치유의 기적을 입었으며, 그녀를 통해서 위로를 받았다. 리드비나는 “치유 능력이 있는 거룩한 여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리드비나의 전구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감사의 뜻으로 보내오는 금전과 물품은 이내 가난한 사람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렇듯 리드비나는 모든 것을 예수님의 은총으로 돌렸으며, 자신이 겪는 병고도 예수님의 뜻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생의 말년이 되면서 더 극심해지는 고통을 겪는 리드비나에게 사람들이, 왜 자신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는지, 고통을 없애달라고 왜 기도하지 않는지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만약 내가 단 한 번의 성모송만으로 치유된다 하여도, 난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왼손에 묵주를 쥐고 끊임없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는 리드비나다운 대답이었다.

수호천사가 전해주는 천상의 위로

이 모든 신비로운 "여행"에서 수호천사는 언제나 리드비나의 손을 잡고 안내했다.

리드비나는 경이로운 천상의 위로를 받았다. 병상에 누워 꼼짝도 못하는 리드비나에게 하느님께서는 천상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뿐만 아니라 성인들과 천사들도 리드비나를 방문하여 위로해주었다. 특히 리드비나의 수호천사는 매일 그녀를 찾아왔다. 수호천사는 그녀에게 가장 든든한 최고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수호천사를 통해 점차 리드비나의 영적 시선도 열렸다. 그녀는 영적 지도자인 고해신부의 수호천사도, 친척들과 많은 사제들의 수호천사들도 알게 되었다. 자신에게 도움과 가르침과 조언을 청하며 네덜란드 너머에서 찾아오는 서민들과 귀족들의 수호천사들도 리드비나에게는 모습을 드러내었다.
리드비나의 수호천사는 여러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때로는 젊은 귀족의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언제나 투명하게 빛이 났다. 때로는 너무 눈부셔서 태양이 천 개가 있어도 수호천사만큼 밝은 빛을 낼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수호천사의 이마에는 늘 십자표시가 있었다. 언젠가 수호천사가 리드비나를 격려하면서 물었다.
“리드비나, 연옥에 있는 친척들을 풀어주기 위해 이 고통을 계속 겪을 수 있겠느냐?”
리드비나가 답했다.
“기꺼이 그러겠어요. 단 한 명의 죄인이 회심한다면, 단 하나의 불쌍한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면, 나는 40년이라도 더, 내 숨이 끊어질 때까지!”
잠시도 병상을 벗어날 수 없는 상태였지만, 수호천사는 리드비나를 순식간에 팔레스타인으로 옮겨놓기도 하였다.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고 있을 때였다. 덕분에 리드비나는 거기 갈바리아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에 이르시는 예수님의 고통에 생생하게 동참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수호천사는 리드비나의 영혼을 이름을 알고 잘 묘사할 수 있는 여러 성지들로 데려갔다. 이 모든 신비로운 “여행”에서 수호천사는 언제나 리드비나의 손을 잡고 안내했다. 그들은 연옥에도 갔고, 장미와 백합과 온갖 향기로운 꽃들이 피어있는 천국의 정원에도, 너무나도 멋진 들판에도 갔다. 그런 “외출”에서 자신의 작은 방으로 돌아오면, 리드비나는 경이롭고도 감미로운 향기와 빛으로 에워싸여 있었고 세상의 친구들은 그것을 알아보았다. 천사가 잡았던 그녀의 손에서는 특히 더 신비로운 향기가 났다.
1년에 서너 번 리드비나는 천국의 장미덤불을 보았다. 그 나무는 ‘교회를 위한 보속’이라는 리드비나의 소명을 상징했다. 당시 교회는 둘로 갈라져 있었다. 리드비나가 태어났을 때(1380년)는 교황청이 프랑스 아비뇽에서 로마로 다시 옮겨져 있었지만(1377년) 프랑스 추기경들이 로마에서 선출된 교황을 인정하지 않고 대립교황을 내세우면서 로마와 아비뇽 두 곳에 교황이 존재하게 되었다. 이 “서방교회의 분열”은 1378년부터 1417년까지 지속되다가 1418년 콘스탄츠 공의회에 의해서 종식되었다. 리드비나는 죄인들의 회개 그리고 교회의 분열이라는 커다란 악을 자신의 고통으로 보속하였을 것이다.
천국의 장미덤불은 처음에는 작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크게 자라났다. 그 장미덤불의 꽃봉오리들이 모두 활짝 피면 그녀의 소명이 다 채워지리라는 것을 수호천사가 알려주었다. 그래서 리드비나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질문을 받았다.
“리드비나, 장미꽃들이 모두 피었어요?”
“아직 안 핀 봉오리들이 많아요.”
그런데 죽음에 이르기 3개월 전 그날, 리드비나가 외쳤다.
“장미나무가 다 자라서 꽃봉오리들이 모두 활짝 폈어요. 이제 곧 나는 이 눈물의 골짜기를 떠날 거예요!”
리드비나의 가장 큰 소명인 교회 분열이 종식되면서 그녀의 고통도 끝난 것이리라.

지상의 소명을 완수하고 천국으로!

리드비나의 말이 맞았다. 1433년 부활 팔일 축제 기간에 53세의 나이로 리드비나는 세상을 떠났다. 썩고 냄새나던 모든 상처와 종기들이 몸에서 사라졌다. 그녀의 몸은 완전히 깨끗해졌고 기분 좋은 향기까지 풍겼다.
그 후 리드비나의 무덤은 치유 기적을 바라는 이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선종 이듬해인 1434년 그 무덤 위에 경당이 세워졌다. 리드비나의 유물들은 200년쯤 뒤인 1615년에 벨기에의 브뤼셀로 보내졌고, 다시 250년쯤 지난 1871년에 스히담으로 되돌아왔다. 1859년에는 스히담에 리드비나의 이름을 딴 성당이 세워졌다. 스히담의 여러 기관들에는 리드비 성녀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1890년 3월 14일 교황 레오 13세는 리드비나를 성인품에 올렸다. 축일은 4월 14일이다. 리드비나 성녀는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 만성적인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준주성범》의 저자인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가 리드비나 성녀의 생애를 글로 남겨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한편 리드비나 성녀의 생전에 고향 스히담의 관공서에서는 그녀의 단식과 투병을 증언하는 문서를 만들었다. 사과 한 조각, 대추야자 몇 개, 물을 탄 포도주, 밀물 때 밀려들어온 바닷물의 소금기가 섞인 물을 마셨다는 등등을 기록하였다. 스히담의 공무원들이 작성한 이 문서는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리드비나의 몸에서 피부와 뼛조각들, 창자가 떨어져 나왔다. 그녀의 부모는 그것들을 단지에 담아 보관했는데, 향긋한 냄새가 풍겨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들자 어머니가 땅에 묻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