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마리아 출판사

요한 베르크만스 성인은 1599년 3월 13일 벨기에 브라반트의 디스트에서 태어났다. 구두 수선공인 아버지 찰스 베르크만스와 어머니 엘리자베스는 매우 신실한 신앙인이었기에 요한을 비롯한 자녀들을 교회 안에서 양육했다.
요한은 아주 어릴 때부터 여러 면에서 남달랐다. 미사에 참례하고 기도를 바칠 때 주님을 향한 사랑과 정성이 더할 수 없이 컸고, 자주 묵주기도를 바칠 뿐 아니라 성모님께 대한 지극한 사랑이 그 안에 가득하였다. 사제가 되어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하고 싶은 열망이 어려서부터 강했다.
아버지의 구두 수선 일터는 1층에 있고 가족들은 그 위층에 살고 있었기에, 요한은 아버지의 일을 자주 도왔다. 훗날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요한은 밝고 쾌활한 성격으로 마을에서 인기가 있었으며, 친구들이 못살게 굴 때도 화를 내는 일이 결코 없었다.

신실하고 순수한 아이

요한 베르크만스는 일곱 살이 되면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 요한을 가르친 부터 반 스핍후터는 요한을 이렇게 기억했다.
“내가 보기에 요한은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아이였다. 나는 다른 학생들 앞에서 요한을 칭찬했다. 나는 그를 학생들이 본받아야 할 모델로 내세웠다. 요한은 너무 순박하고 순수해서 또래 소년들이 종종 해코지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조차 알지 못했다. 덕분에 그런 아이들이 아닌 진지하고 괜찮은 또래들이 그의 친구가 되었다. 요한은 무례하고 시끄럽고 음담패설을 입에 올리는 또래들과는 교제를 피했다.”
스핍후터가 이 이야기를 요한의 아버지 찰스 베르크만스에게 해주자,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사제로 교육시키기로 결심했다. 아버지의 결심은 요한이 아홉 살이 되면서 구체화되었다. 요한이 노트르담 사제관에서 살며 페트 엠메릭 신부의 지도를 받게 된 것이다. 사제성소를 키워가는 소년들이 모인 그곳에서 소년 요한은 학교에 다니고 가끔씩 집에 오곤 했다.
노트르담 사제들은 요한이 그 누구보다도 사제가 되기에 적합한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 가기 전에 요한은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 앞에서 오래 사랑을 나누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제들은 어린 요한을 새벽 5시 미사에 복사를 서도록 준비시켰다. 요한은 라틴어 경문과 미사 예식을 재빨리 익혀 복사로 주님의 제단에 서게 되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의무를 깊은 신앙과 기쁜 마음으로 행하였다.
그럴 무렵에 요한의 어머니는 병세가 조금씩 더해가고 있었다. 요한은 틈틈이 어머니를 간호하고 어린 동생들 네 명을 보살피며 학교도 다녔다. 어머니를 대신하여 집안일을 돌보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침대 곁에서 숙제를 하고, 어머니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어머니와 함께 기도하였다.

남다른 심성의 소년

복사들과 학생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된
요한 베르크만스 성인

요한은 천성적으로 남달랐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논쟁을 벌여도 중재하려고 끼어들지 않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조용히 보냈다. 항상 순종적이고 권위에 결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한창 놀이에 빠져 있어도 그는 기도하거나 책을 읽거나 공부하러 자신의 방에 들어가곤 했다. 그럼에도 엠메릭 신부가 요한더러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것을 조언하면 즉시 순명했다. 요한은 성경에서, 주님의 수난에 관한 책에서, 성인들의 삶에서 자기 삶의 모델을 찾아나갔다.
당시에 첫영성체는 열네 살이 되어야 가능했다. 요한은 열두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주님의 거룩한 몸을 모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엠메릭 신부도 요한의 그런 열망을 모르지 않았기에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한은 병상에 있는 어머니를 제외한 아버지와 형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첫영성체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해에 요한은 첫 고해성사도 받았다. 열두 살 소년 요한은 엠메릭 신부 앞에서 자신의 죄들을 열거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고해사제도 함께 울 정도로 진심이 담긴 울음이었고 슬픔이었다. 소년 요한은 다른 사람들은 사소하게 여기는 결점들까지도 남김없이 고해했다. 고해사제가 천사 같은 이 소년에게 엄격한 보속을 주는 것이 주저될 정도였다.
요한의 거룩한 열망이 한창 무르익어가던 그 시기에 아버지의 구두 가게가 망하는 큰일이 일어났다. 이는 사제를 열망하던 요한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아버지는 아들 요한에게 말했다, 자신은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고 그래서 공부를 시킬 수 없다고. 요한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장사를 배우기로 했다. 사제가 되려는 꿈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사제가 되려는 아들의 꿈을 그대로 주저앉힐 수가 없었기에 메헬린 관구의 참사위원인 요한 프로이몬트를 찾아갔다. 그는 요한을 자신의 대저택으로 불러들였다. 그곳에는 사제가 되기를 열망하는 소년들이 있었다. 요한은 그 저택의 규칙을 충실히 지키면서, 마루를 쓸거나 닦고 정원을 가꾸고 접시를 닦는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그런 요한을 지켜보며 프로이몬트는 요한의 좋은 심성을 알아보았으며, 그때부터는 귀족들과 고위직 사람들의 연회 식탁에서 시중을 들도록 하였다.

겸손하고 경건한 청년

요한이 메헬린에서 살고 있는데 예수회에서 그 지역에 학교를 열었다. 공부할 수 있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은 요한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가장 좋은 성적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교수들과 학우들도 요한의 성적이 아니라 그에게서 엿보이는 겸손과 순명에, 그의 거룩함에 경탄했다. 그는 가장 보잘것없고 힘든 일을 자원했으며, 가장 가난하게 옷을 입었고, 자신을 가장 낮은 자리에 놓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매일 성모님 앞에 엎드려서 묵주기도를 바쳤으며, 성모님께 봉헌된 토요일과 성모님 축일에는 빵과 물로만 지내곤 했다.
1616년 9월 24일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가졌던 사제성소를 실현하는 한편, 아주 어릴 때 있었던 예수회 사제들과의 그 강렬한 만남과 결심을 완성하게 되었다.
요한은 아주 어릴 때부터 성모님께 대한 사랑이 특별했지만, 몽테귀의 성모상도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5세기 후반 혹은 16세기 초반에 나무로 된 작은 성모상이 몽테귀의 가파른 언덕 정상의 참나무 숲속에서 목동에게 발견되었다. 목동은 조금 망가져 있는 성모상을 집으로 가져가려고 했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들 수가 없어 그대로 두었다. 그 후 사람들이 그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1603년 8월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었던 소녀 페트넬이 그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여 다시 보게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이 기적을 계기로 몽테귀의 성모님께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당시 네 살이던 요한도 가족들 틈에 끼어 그해 9월 8일 성모님 탄생 축일에 그 성모님을 처음으로 찾아갔었다.
1년 후인 1604년 9월 8일에 디스트 마을 사람들은 몽테귀의 성모님을 다시 찾아갔다. 장님 소녀 페트넬의 치유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 그런데 그날 저녁, 일군의 칼빈파 사람들이 그 성모상을 파괴하려고 내려왔으며, 예수회 사제들이 성모상을 다른 곳으로 옮겨 그 만행을 피할 수 있었다. 그때 요한은 어렸지만 사람들의 분노와 슬픔이 각인되었고, 예수회 사제들에 대한 강렬하고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다.
한편 요한은 오랜 시간 중병에 시달리던 어머니를 예수회에 입회한 1616년 12월 1일에 떠나보내는 슬픔도 감내해야 하였다.

성실한 학생, 겸손한 수도자

요한 베르크만스 성인은 1616년 9월 24일 예수회에 입회하여 어린 시절부터 가졌던 사제성소를 실현하는 한편, 아주 어릴 때 있었던 예수회 사제들과의 그 강렬한 만남과 결심을 완성하게 되었다.

요한 베르크만스는 1618년 9월 25일에 첫 서원을 발하고 얼마 후 로마로 가게 되었다. 학업 능력이 특출한 그에게 철학과 신학 공부를 시키기로 장상들이 결정했기 때문이다. 요한은 예수회 회원의 수호성인인 알로이시오 곤자가(1568-1591년, 축일 6월 21일, 1605년 시복, 1726년 시성)가 공부했고 짧은 생을 마감했던 곳으로 가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크게 기뻐했다.
요한은 이 기쁜 소식을 아버지께 알리려고 10월 18일에 편지를 써 보냈다. 그리고 그가 받은 답장은 아버지가 한 주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친척들이 요한에게 상처가 될까 싶어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10월 말경 로마로 떠나기에 앞서 그는 옛날 영적 지도자였던 요한 프로이몬트 참사위원에게 자신의 동생들을 잘 보살펴달라는 편지를 썼다.
요한은 예수회 동료인 바르톨로뮤 펜네만 신부와 함께 10주간을 걸어서 로마로 갔다. 그들은 1618년 12월 31일에 로마에 도착했고, 예수회 신학원에서 새로운 미래를 시작했다. 요한이 공부하던 그 신학원 원장인 체파리 신부는 훗날 알로이시오 곤자가와 요한 베르크만스, 이 두 성인의 전기를 썼다. 요한 베르크만스의 전기에서 체파리 신부는 이렇게 증언했다.
“요한 베르크만스는 모든 것에 있어서 온전하게 덕을 갖춘 사람이었다. 일상생활에서 항상 하느님의 은총을 자신의 전 생명으로 받아 모셨으며, 삶의 순간순간이 은총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당시에 그 신학원 가까이에는 알로이시오 곤자가 복자의 무덤이 있었다. 요한은 알로이시오를 그대로 닮고 싶은 열망으로 로마에서의 매일을 채워갔다. 그런 만큼 그에게 모든 것은 주님께서 주시는 기회였고 기쁨이었다. 성실하게 공부했으며, 규칙을 완전히 따랐고, 항상 웃었으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순명했다. 그의 영적지도자인 마수치 신부는 훗날 요한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로마에서 생의 말년을 함께 보낸 알로이시오 곤자가 복자 이후 요한 베르크만스보다 더 모범적으로 살거나 더 순수한 양심을 가지거나 더 완전한 덕을 지닌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요한을 가르친 교수들 중 한 명인 페코로미니 신부도 이처럼 증언했다.
“요한 베르크만스는 동시에 몇 가지 일들을 수행할 수 있는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일에 대한 그의 열중과 적응력은 거의 일치되지 않았다. 그리고 결코 능가하지도 않았다. 그는 다양한 지식과 여러 가지 언어를 익히기 위한 수고를 아끼거나 지루해하지 않았다.”

거룩하고 짧은 생

1621년 7월 8일, 요한 베르크만스는 로마 학원 철학 토론대회의 대표로 선발되었다. 그리고 8월 6일에는 그리스 학원의 토론 대표로도 초대받았다. 뜨거운 여름에 이탈리아어와 그리스어라는 두 가지 언어로 대회를 준비하면서 하루에 17시간씩 공부했다. 결국 고열에 시달렸다. 모든 치료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열이 너무 높아서 정신착란까지 일어났다.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러했다. “십자가와 묵주와 규칙서를 가져다주십시오. 그것으로 저는 기쁘게 하느님 곁으로 갈 수 있습니다.”
1621년 8월 13일 아침, 종부성사를 받은 후 요한 베르크만스 수사는 평화로운 모습으로 세상과 작별했다. 생전에 자신의 모델로 삼았던 알로이시오 곤자가 복자보다 한 살 아래인 스물두 살이었다.
거룩한 청년 수사의 죽음 소식은 거룩한 도시 로마에 순식간에 퍼졌고, 그의 주검을 보고 유물을 얻기 위해 수천 명이 몰려왔다. 그러면서 요한 베르크만스 수사의 중개를 통한 기적이 적지 않게 보고되었다. 어느 장님 할머니는 안치된 요한의 차가운 손가락을 자신의 눈에 대었는데 그 즉시 시력이 회복되었다.
세상을 떠난 해부터 시복이 거론될 만큼 요한 베르크만스 수사는 일상의 아주 평범한 모든 것과 모든 일에서 성덕을 위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런 면모가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감명을 주었다.
요한 베르크만스 수사는 1865년 5월 9일 복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이듬해인 1866년 미국 루이지애나 주 그랜드코토 성심 아카데미 수련생이던 메리 윌슨에게 요한 베르크만스가 나타났고, 그녀가 치유되면서 이 기적은 그의 시성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888년 1월 15일 요한 베르크만스 수사는 성인의 반열에 올랐으며 복사들과 학생들을 위한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의 축일은 8월 13일이었으나, 1969년 로마 교회력이 개정되면서 11월 26일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