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마리아 출판사

19세기는 불가지론이 들불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불가지론(不可知論, Agnosticism)은 사물의 궁극의 실재, 절대자, 무한자 또는 신은 ‘알 수 없다agnostic’는 실증적이고 회의주의적 철학 사조이다. 1869년 철학자 T. H. 헉슬리가, 바오로 사도가 아테네 시민들에게 했던 말 중에서 “알 수 없는 신에게”를 주제로 했던 강연이 이 사조의 기원이다. “… 내가 돌아다니며 여러분의 예배소들을 살펴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사도 17, 23)
이 사조에 따르면,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지력도 제한되어 있는 까닭에 무한하고 절대적인 신을 인식할 수 없으며 단지 유한한 것만을 경험하고 인식할 수 있다. 인간과 절대자 사이에는 건너갈 수 없는 일종의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점에 하느님께서는 “사랑”이라는 도구로써 당신을 보게 하시고, 당신의 존재를 유한한 인간에게 드러내셨다. 실증적이고 회의론자들의 주장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 루이지 마리아 몬티 복자도 이 목적을 위해 세워진 “사랑”이라는 도구이리라.

발은 세상에, 눈은 천상에

복자 루이지 마리아 몬티

루이지 마리아 몬티는 1825년 7월 24일 이탈리아 밀라노 교구의 작은 마을 보비지오 마스치아고에서 열한 명의 형제들 중 여덟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가정은 교회’라고 늘 강조하며 기도와 일상의 노동으로 하느님을 섬기면서 성가정을 꾸려나갔다. 그러나 그가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때부터 그는 어머니와 어린 형제들을 위해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는 목공소에 취직하여 열심히 일을 하면서 기도생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저녁마다 작업이 끝나면 그의 일터에는 그 또래의 동료들과 농부들이 모여서 함께 저녁기도를 바쳤다. 이들의 모습에 감동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 함께하였다. 그러면서 이 모임은 “예수 성심의 동료들The Company of the Sacred Heart of Jesus”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보비지오 마을의 사람들은 그들을 “동료 수사들The Company of Friars”이라고 불렀다.
그 젊은이들은 금욕생활을 추구하면서 틈틈이 복음 말씀을 나누고 성지순례를 함께하였다.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돌보는 데 헌신했으며, 교회를 떠나간 이들에게 다시 복음을 전하려는 열망으로 타올랐다. 그야말로 수도자와 다름없는 ‘재속 봉헌Consecratio mundi’의 삶을 살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터를 수도원으로 삼아 자신의 일과 일상을 있는 그대로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이 모임을 이끄는 루이지 마리아 몬티는 스물한 살이던 1846년에 영적 지도자 앞에서 자신을 하느님께 오롯이 봉헌하였다. 평신도 신분이지만 정결과 순명을 서약하면서 살겠다고!
당시에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를 비롯한 일부 지역은 오스트리아에 점령되어 있었는데, 1851년에 루이지 마리아 몬티와 동료들은 명백한 항거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들은 밀라노에 있는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72일 만에 석방될 수 있었다.

원죄 없으신 성모의 아들이 되어

1852년 루이지 마리아 몬티는 자신의 영적 지도자인 루이지 도시Louigi Dossi 신부가 있는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에 동료 5명과 함께 입회하였다.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가 설립되는 경위는 이러하다. 성 로도비코 파보니Lodovico Pavoni 신부(1784-1849년, 축일 4월 1일, 2016년 10월 16일 시성)는 어릴 때부터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이 컸다. 사제가 된 후에는 사회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으며, 이 목적으로 1825년에 자신의 본거지인 이탈리아 브레시아에서 사제와 수사들로 구성된 공동체를 만들어 교황청의 승인까지 받았다.
한편 당시에 브레시아 교구의 주교좌 참사위원장이던 루치 몬시뇰이 1847년 8월 11일에 ‘원죄 없으신 성모의 아들회’를 설립하면서 로도비코 파보니 신부도 합류하여 설립의 기초를 놓게 되었다. 그해 12월 8일 성 로도비코 파보니 신부와 첫 회원들의 수도 서원이 거행되었다. 그로부터 5년 후, 루이지 마리아 몬티도 이 수도 공동체에 입회한 것이다.
루이지 마리아 몬티가 입회하여 1857년까지 5년간의 수도생활 기간은 그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다. 로도비코 파보니 신부가 쓴 수도 회헌에 푹 빠지게 되었고, 교육자로서의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1855년에 브레시아 지역에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는 콜레라에 걸린 사람들을 돌보면서 간호 이론과 실무를 익힐 수 있었다.
이런 중에도 루이지 마리아 몬티는 자신의 성소를 명확히 찾고 싶었다. 그런 그에게 마침내 하느님께서 답을 주셨다. 그는 선종하기 4년 전인 1896년에 쓴 편지에서 당시 32세 때인 1857년의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을 이렇게 적었다.
“그날 나는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천상적 위로가 전혀 없이 내 마음은 메마르고 차가웠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기 직전이었다. 바로 그때, 거기엔 나 혼자였는데, 어떤 소리가 내 안에서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분명하고 명확한 어조로 나에게 말했다. ‘루이지, 성당의 성가대로 가서, 성체께 네가 겪는 고뇌를 다시금 말씀드려라.’ 그 즉시 나는 그렇게 하였다. 무릎을 꿇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사람 형상인데 두 명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알아보았다. 예수님과 거룩한 어머니였다. 두 분이 천천히 나에게로 다가오시더니 낮은 어조로 말씀하셨다. ‘루이지, 너는 더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크나큰 전투를 치러야 할 것이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모든 것을 잘 이겨낼 것이다. 우리는 결코 너를 버려두지 않고 도와줄 것이다. 네가 시작한 그 길을 계속 따라가거라.’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두 분은 사라지셨다.”

더 높이, 더 깊이

그 후부터 루이지 마리아 몬티 수사의 길은 분명하고 선명해졌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거룩한 부르심을 따랐다.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의 ‘진정한 아버지’이자 ‘설립자’가 된 것이다. 짧은 역사로 인해 흔들리고 있던 ‘원죄 없으신 성모의 아들회’가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로 거듭나면서 새로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즈음 루이지 수사에게 주어진 사도직은 로마에 있는 병자들의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일이었다. 그 소명을 받고 그는 “마리아의 아들”의 정신에 완전히 부합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입회 전에 동료들과 함께하였던 Company 시절의 활동과도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1858년 루이지 수사가 로마의 성령 병원Santo Spirito Hospital에 도착했을 때 직면한 상황은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과는 전혀 달랐으며 예전에 동료들과 함께한 활동들과도 완전히 달랐다. 주님께서 그에게 바라신 것은 병자들을 돌보며 겸손하게 순명하는 것이었다. 그는 환자들을 돌보는 데 필요한 외과 응급처리와 약 조제와 간호사 업무를 공부했으며, 특히 간호 업무에 주력했다.
1877년, 교황 비오 9세는 만장일치의 뜻을 따라 루이지 마리아 몬티 수사를 공동체의 총장으로 임명했다. 루이지 수사는 그때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23년간 이 직무에 최선을 다하였다. 그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과 환자를 위해 자신을 봉헌하며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겸손하게 헌신하였다. 그러면서 “사랑의 사도”라는 별칭이 늘 그를 따라다녔다.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다른 처신을 허용하지 않았다. 심하게 아플 때조차 특별한 치료와 대우를 허락하지 않았다. “교회와 식당에서 우리는 동일합니다. 비록 우리의 역할은 다르다 할지라도 주님 앞에서 우리는 똑같이 배고픈 사람들입니다.” 아무도 먹지 않는 음식을 골라 먹었고, 허리 디스크와 위궤양과 눈병 등으로 고통을 겪었지만 참을 수 있는 한 표현하지 않았다. 그는 신체의 고통까지도 주님을 위해 바쳐야 하는 하나의 의무로 생각했다. 고통에 숨은 가치를 알아보았다.
그는 성경을 읽고 기도와 성사 안에서 겸허하면서도 힘차게 주님을 갈망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주님의 뜻을 행하고 주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 만큼 주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완전히 바칠 수 있기를 갈망했다. 또 그런 만큼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자신의 길을 열어주시도록 맡겨드렸다.
“나는 진정 주님께 자그마한 슬픔도 끼치지 않고 어떤 잘못도 고의로 저지르지 않고 근면하게 살았던 것일까? 이런 잘못을 저지르기 전에 기꺼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오! 좋으신 하느님! 저를 용서해주소서.”

주어진 소명을 끝내고

루이지 마리아 몬티 수사의 아름다운 삶도 서서히 마지막으로 향하고 있었다. 20세기가 막 열린 1900년 9월 26일, 그는 병자성사를 받았다. 옆에 있던 형제가 울자 그가 그랬다. “자네 왜 우는가? 우는 건 쓸데없는 일이라네.”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견디는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마디는 오직 주님과 성모님을 부르는 화살기도뿐이었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십자가에 입을 맞추곤 하였다. 9월 30일 저녁,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서는 동료들에게 강복을 주었다. 그리고 10월 1일 오후 6시경, 루이지 마리아 몬티 수사는 이 세상에서의 숨을 거두어들였다.
“사랑의 사도” 루이지 마리아 몬티 수사의 죽음이 전해지자 로마는 슬픔에 휩싸였다. 로마의 한 신문은 그의 죽음을 이렇게 애도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평화 속으로 이 충실한 종의 영혼을 거두어들이셨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살다 간 루이지 마리아 몬티 수사가 이 세상을 떠나 천상에 오른 지 103년 후인 2003년 11월 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복자품에 올렸다. 이탈리아 샤르데냐 주 보사의 농부 지오반니 루이지 이켈Jiovanni Luigi Iecle이 받은 치유가 루이지 마리아 몬티 수사의 중개로 일어난 기적으로 인정된 것이다. 그날 시복식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러한 말로써 이 겸손한 수도자를 칭송하였다.
“‘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에제 47, 1. 9) 모든 것을 되살리는 물의 이미지는 육신과 영혼이 상처 난 이들과 고아들을 치유하는 데 전적으로 헌신했던 루이지 마리아 몬티 복자의 삶을 표현하는 데 아주 적절합니다. 그는 즐겨 그들을 ‘그리스도의 가난한 이들’이라고 불렀으며, 생생한 신앙과 끊임없는 기도로써 그들을 돌보고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 복음적 실천에 있어, 그는 거룩한 동정 마리아에게서 늘 영감을 받았으며, 자신이 설립한 그 수도회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의 표징 아래에 두었습니다. 오늘 새로 탄생하는 이 복자가 전한 메시지는 너무나 적절합니다! 자신의 영적 아들들과 모든 신자들에게 그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충실하게 따르면서 복음적 사랑을 널리 선포하는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고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에게 사랑으로 의탁하는 데 있어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루이지 마리아 몬티 복자의 축일은 10월 1일이다. 그는 알로이시우스 마리아 몬티Aloysius Maria Monti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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