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마리아 출판사

오늘날 전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상당수 그리스도교 자선사업에 그의 이름이 붙을 정도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생을 바친 거룩한 사람 빈첸시오 아 바오로Vincentius a Paulus(프랑스어로는 ‘뱅상 드 뽈Vincent de Paul’) 성인! 빈첸시오 성인은 1581년 4월 24일 프랑스 남서부 랑드 지방에 있는 닥스 시 근처 푸이에서 가난한 농가의 여섯 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곳 푸이Pouy의 지명은 1828년부터 그의 이름이 붙여져 ‘생 뱅상 드 뽈’로 불리게 되었다.
빈첸시오는 가난한 가정에서 어린 시절부터 부모를 도와 농사일을 했지만, 특히 어머니로부터 가난한 사람에게 연민을 갖고 그들을 돕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도 빈곤했지만, 지역 주민의 절반 이상이 글을 읽거나 쓸 줄 모르는 가난한 지역이었다. 15세이던 1595년부터 닥스 시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학업을 시작했다. 남달리 총명했기에 당시 그 지역의 유명 변호사이던 코메의 아들을 가르치는 가정교사로 일하며 스스로 학비를 벌었다.

사제서품, 피랍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시는 주님을 사랑하고 섬겼던 빈첸시오 아 바오로 성인

1597년 빈첸시오는 툴루즈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하여 20세이던 1600년 9월 13일 사제품을 받았다. 아들이 사제가 되기를 열망하고 노력한 어머니의 정성, 그리고 여러 유력한 은인들의 도움은 그가 갓 스물 살에 사제가 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1605년, 사제서품 5년째인 그해, 빈첸시오 신부는 어떤 부인의 기부금을 받기 위해 마르세유에 갔다가 배를 타고 돌아오던 중에 해적들에게 붙잡혔다. 그러곤 지중해 연안에 있는 북아프리카의 튀니지로 끌려가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부에게 팔렸다가 뱃멀미 때문에 연금술을 연구하는 노인에게 다시 팔렸다. 그 노인에게서 여러 가지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화학과 물리학 등도 배웠는데 이는 나중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그 노인이 다른 나라로 가면서 빈첸시오는 어느 배교자에게 넘겨졌다. 그 배교자는 세 명의 첩과 살고 있었는데, 그중 한 여자는 빈첸시오의 가톨릭 신앙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남편을 설득하여 교회로 다시 돌아오게 했으며, 덕분에 빈첸시오는 노예생활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1607년의 일이다.
빈첸시오는 그 배교자와 함께 이탈리아의 아비뇽으로 가서 교황의 부특사인 몽토리오 주교 앞에서 그가 회개를 선서하고 완전히 교회로 돌아오게 했다. 그리고 주교는 빈첸시오를 데리고 로마로 가서 신학을 다시 공부하게 했는데, 그 기간에 빈첸시오는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의 결과로 시작된 교회 개혁을 목격할 수 있었고 고위 성직자들과 친분도 맺게 되었다.
1609년에는 프랑스로 돌아와서 국왕 앙리 4세와 이혼한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 왕비의 궁전 전담 신부가 되었다. 그 기간에 빈첸시오는 귀족들의 화려한 삶과 가난한 이들의 비참한 삶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그는 수입의 일부분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었다.

공디 백작과의 만남 그리고 본당사목

1610년, 피에르 드 베륄 신부(1575-1629년)와의 만남은 빈첸시오 신부의 삶에 큰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에 오라토리오회를 설립하러 왔던 베륄 신부는 그 만남 이후부터 훗날 추기경이 되고 선종할 때까지 빈첸시오에게 영적 도움을 주었다. 첫 만남 후 3년 정도 흘렀을 때 베륄 신부는 파리 근교의 본당에서 사목하던 빈첸시오 신부에게 공디 백작의 전담 신부 겸 가정교사 일을 제안했다. 공디 백작은 프랑스 함대 총사령관이었으며, 그의 세 아들 모두 파리의 대주교로 임명된 유명 인사였다. 그런데 그의 부인은 신실한 신자이지만 세심증으로 영적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빈첸시오는 공디 백작과 그 가문을 통하여 귀족들과 친분을 가지면서도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화려한 삶 저편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영적 물질적 빈곤에 시선을 두었다. 그 저택의 하인들과 소작인들, 공디 백작 함대의 갤리선에서 비참하게 일하는 죄수들을 진심으로 돌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공디 부인의 부탁으로 영지 내 폴빌의 가난하고 병들어 죽어가는 노인에게 병자성사를 베풀게 되었다. 병자성사로 평화로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는 그 노인을 보면서 빈첸시오는 자신이 돌보아야 할 사람들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 그는 백작 부부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베륄 신부의 허락을 받아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베륄 신부의 주선으로 1617년 7월에 리용 근교에 있는 샤티옹 레 돔브 본당의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독일의 마르틴 루터에게서 촉발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분열과 프로테스탄트의 탄생은 16세기의 유럽에 큰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프랑스도 그 혼란을 비켜가지 못했다. 프랑스 내의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는 30여 년 동안 여덟 번이나 전쟁을 벌였는데, “위그노 전쟁” 또는 “30년 전쟁”으로 불리는 그 역사이다. 1562년부터 1598년 사이에 벌어진 그 전쟁은 프랑스 사회와 경제에 큰 타격을 가했지만 그 결과는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더 가혹했다. 당시의 철저한 신분계급 사회에서 하층민들은 세금을 착취당하고 파탄에 빠졌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귀족들의 부귀영화는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도시 파리와 멀리 떨어진 샤티옹의 상황은 더 극심했다. 빈첸시오 신부가 부임했을 때 그 본당에는 사제관도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오랫동안 사제가 없었던 까닭이다. 그는 마을의 외과 의사인 베니에 형제의 집에 기거하면서 그동안 방치되어 있던 성당과 제대를 정돈하고 영적 정비에 나섰다.

애덕회 설립

빈첸시오 아 바오로 성인의 친필 편지와 그의 생가

그런 어느 날 주일미사 전, 동네의 한 가족이 모두 병에 걸려 아주 위험한 처지에 있다는 소식이 빈첸시오 신부에게 전해졌다. 그는 준비한 강론을 대신하여 그들의 사정을 알리고 사랑으로 돌보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날 오후에는 그 집을 방문하려고 나선 길에서, 많은 사람이 먹을 것과 필요한 물건을 그 가족에게 전달하고 오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훗날 “마치 하나의 행렬처럼 보였다”고 회고할 정도로 그 모습은 그에게 각인되었다.
이 일에서 그는 큰 깨달음을 얻는데, 자선은 적절히 조직적으로 행해져야 한다는 점이었다. 많은 사람이 자선에 동참한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한꺼번에 이루어짐으로써 비효율적이고 일회성으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계기로 그는 가난한 이들을 물적으로나 영적으로 돌보는 목적의 평신도 자선단체 ‘애덕회Confrérie de la Charité’를 만들었다. 1617년 8월 23일이었다.
애덕회는 처음에 8명으로 시작되었으며, 병자들을 직접 찾아갈 수 있는 샤티옹의 시립병원에서 정기적으로 모였다. 빈첸시오는 미사를 시작하기 전마다 신자들에게 본당 내의 궁핍한 가정의 사정을 알려주고 돌보아주도록 요청했으며, 그에 따라 신자들은 그 집에 가서 필요한 도움을 주었다. 겸손과 소박과 사랑의 복음 정신을 강조하면서 어떤 봉사이든 실현 가능하고 지속적인 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을 자기 자녀처럼 생각하며 그들에게 수프를 끓여주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께 봉사하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하라고 일깨워주었다. 그해 12월 8일, 그는 회칙을 작성했는데, 그가 직접 말하는 애덕회의 목적은 이러하다.
“이 회의 목적이 가난한 이들을 육체적으로뿐 아니라 영적으로 돕는 데 있으므로 위에 말한 가난한 이의 봉사자들은 병이 나은 사람들은 더 착하게 살도록,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선종하록 준비시키는 데 힘쓸 것이며, 이렇게 하도록 전념할 것이다.”
그리고 훗날 그는 자신이 설립한 수녀회 자매들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계속적으로 돕고자 갈망한 것이 사람의 생각에서 나올 수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하실 수 있는 것이지 사람에게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샤티옹에서 본당사목을 시작한 지 2년 정도 되었을 때, 빈첸시오는 공디 백작 부부의 간곡한 청에 따라 다시 그 집으로 들어갔다. 공디 가문에 속한 마을에서 자유롭게 선교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공디 가문의 전속 사제가 되었다. 그는 그곳의 여러 마을에서 선교하며 애덕회를 결성하고, 노예들의 대우와 생활이 개선되도록 전력을 다했으며, 그들을 위해 병원을 설립하고 영적인 도움도 제공했다. 1625년 공디 부인이 사망할 때까지 그 일은 계속되었다.
당시 제네바의 주교이던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 그리고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 성녀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그 기간에 있었고, 주교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요안나 성녀의 영적 지도자가 되어주었다.

주님의 대리자를 위한 선교 사제회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질적 지원에서 그치지 않고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빈첸시오 신부는 교구 사제들과 함께 ‘선교 사제회’를 결성했다. 1625년 4월 17일이었으며, 선교 사제회는 당시에 비어있던 나환자 병원인 라자로의 집에 자리하면서 ‘라자로회Lazarists’로 불리게 되었다. 라자로회 신부들은 시골에서 일정 기간 머물며 교리를 가르치고 성사를 집전했으며, 농번기에는 공디 백작이 파리에 마련해준 거처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수도생활을 했다. 라자로회는 빈첸시오 생존 시에 이미 프랑스를 넘어 영국과 폴란드와 이탈리아까지, 사후에는 유럽의 북쪽 끝 스코틀랜드 그리고 유럽 너머 북아프리카까지 전파되었다.
이 활동은 가난한 평신도에서 그치지 않고 영적으로 가난한 사제들에게로 이어졌다. 사제들의 영적 쇄신과 복음화를 위해 교육과 피정을 제공했으며, 이것이 1632년부터는 파리에서 매주 화요일마다 갖는 성직자들의 정기모임인 ‘화요회’로 발전되었다. 보쉬에J. B. Bossuet 신부, 쉴피스회 설립자인 올리에Olier 신부 등 프랑스 교회사의 중요 인물들이 거기에 참여했었다. 빈첸시오 신부가 선종할 때까지 250명의 사제들이 동참했으며, 그중에서 그의 추천을 받은 22명이 주교로 선출되었다.

최초의 활동 수녀회 설립

빈첸시오 아 바오로 성인의 영적 동반자인 루이즈 드 마리약 성녀

1625년 12월 21일 빈첸시오 신부가 미망인 루이즈 드 마리약Louise de Marillac 성녀(1591-1660년, 축일 3월 15일)와 만나게 된 것은 빈첸시오 신부에게는 주님의 또 하나의 선물이라고 하겠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1623년 6월 4일 성 니콜라스 성당에서 봉헌되는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 중, 루이즈는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빛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며 복음의 전달자 역할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환시로 보게 된 것이다. 루이즈는 환시로 본 것을 양피지에 기록했으며 늘 지니고 다녔다. 그 후 알게 된 빈첸시오 신부를 그 환시에서 만난 사제로 확신했다.
루이즈는 빈첸시오 신부에게 큰 감화를 받고는 영적 지도자로 삼았으며 그의 애덕회 사업에 합류했다. 1629년부터는 시골의 애덕회를 방문하고 격려하는 일이 루이즈에게 맡겨졌으며, 루이즈와 친분 있는 상류층 부인들도 그 일에 합류하게 되었다. 1633년 빈첸시오 신부는 부인들의 그 활동에 ‘애덕 부인회Dames de la Charité’라는 이름을 붙이고 활동 지침서도 만들었다.
그런데 매일 병원을 방문하여 가난한 중환자들을 돌보고, 버림받은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당시의 신분사회에서 상류층 부인들과 보살핌을 받는 사람들 모두에게 힘든 일이었다. 부인들이 그 봉사를 하녀들에게 시키면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가난한 이들과 오히려 갈등을 유발했던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빈첸시오는 이 봉사를 전담할, 그때까지의 전형적인 봉쇄 형태가 아닌 수도원 담장 밖의 병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직접 돌볼 수도회 형태를 생각해냈다. 그 결과 우리 교회사에서 활동 수도회의 효시가 된 ‘애덕의 수녀회Soeurs de la Charité’(현재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가 탄생될 수 있었다.
빈첸시오는 회원들이 수도복을 입거나 서로를 수녀라고 부르는 것을 삼가도록 했다. 그들에게는 병자들이 있는 곳이 수도원이고 인근 본당이 수도원 성당이며 활동을 위해 걷는 길이 수도원 정원이었다. 순명은 수도원의 담이었다. 이 수녀회는 설립자 생존 시에 이미 프랑스 곳곳에, 그리고 국경 너머로 퍼질 정도로 크나큰 호응을 받았다.

가난 안에 숨겨진 보물

설립자 빈첸시오 신부는 수녀회 딸들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강조했다.
“여러분에게 수녀원은 병자들의 집이며 장상이 있는 곳이고, 여러분의 봉쇄 구역은 도시의 거리이며, 여러분을 봉쇄하는 것은 순명이고, 여러분이 서약하는 것은 하느님 섭리에 대한 한결같은 신뢰입니다.”
“가난하고 병든 이웃에게 가는 모습은 마치 불이 났을 때 달려가는 사람 같아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은 대개 지식이 없고 거칠기 때문에, 그들의 외적 차림새나 정신적인 능력을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신앙의 빛으로 본다면, 그들은 가난한 이가 되기로 작정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을 대신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는 다른 모든 것에 우선되어야 하고 지체 없이 행해져야 합니다. 기도드리는 시간에 어떤 어려운 사람에게 약품과 도움을 베풀어야 할 때 짜증을 내지 말고 그에게 가서 해주어야 할 것을 기도를 계속하듯이 하느님께 바쳐야 합니다. … 하느님의 일 때문에 하느님을 떠나거나, 하느님의 일인 여타의 일 때문에 먼저 하던 하느님의 일을 중단했다고 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무시당했다고 느끼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어떤 가난한 이를 도와주고자 바치던 기도를 중단하면, 그것도 하느님께 봉사하는 일임을 명심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규칙에 우선하며, 만사는 무엇보다 사랑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사랑은 그 자체로 위대한 주인이므로 우리는 그가 명하는 대로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의 새로워진 열성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고, 무엇보다 가장 버림받은 이들을 찾아내도록 합시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우리에게 주인으로 또 지배자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지만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 눈앞에서 흘리는 땀과 희생 덕분에 가능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최우선적으로 선택하고 그들 안에 계시는 주님을 섬기는 데 모든 것을 불사른 빈첸시오 신부는 1660년 9월 27일 파리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고 라자로회 파리본부의 모원에 묻혔다. 1737년 6월 16일 클레멘스 12세 교황은 그를 성인으로 선포했으며(축일 9월 27일), 1885년 레오 13세 교황은 ‘모든 자선사업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