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린디시의 라우렌시오Laurentius di Brindisi 성인은 1559년 7월 22일 나폴리 왕국의 항구도시 브린디시에서 태어났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이탈리아 반도는 지금처럼 하나의 나라가 아니었다. 북부, 남부, 중부, 동부 등으로 나뉘어서 각기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남부의 나폴리 주변 지역도 13세기부터 19세기까지 독립된 왕국이었기에, 라우렌시오 성인이 태어난 당시에 브린디시는 이탈리아가 아니라 나폴리 왕국에 속한 지역이었다.
그의 아버지 굴리엘모 루소는 베네치아 출신의 부유한 상인이었고, 어머니는 엘리사벳 마셀라였다. 그의 원래 이름은 ‘율리오 체사르 룻소Julius Caesar Russo’이다.
8세 때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교육을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가 운영하는 통합학교에 맡겼다. 몇 년 후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주교좌성당에서 고위 성직자로 있던 삼촌에게로 갔다. 그는 삼촌이 운영하는 명문 사립학교 성 마르코 칼리지에서 고등교육을 받았다.
그러던 중 당시 베네치아에서 작은 성당을 관리하고 있던 카푸친 작은 형제회를 알게 되었다. 그는 그들의 가난한 생활양식에 큰 감동을 받았으며, 마침내 그 수도회의 일원이 되었다. 열여섯 살이던 1574년 2월 18일, 그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 수련자가 되었고 ‘라우렌시오’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수도자 라우렌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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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75년 라우렌시오 형제가 수도회에 입회했을 대, 카푸친 생활양식의 어려움들을 상세히 묘사함으로써 그를 단념시키려는 관구봉사자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방에 십자고상이 있기만 하면 나에게는 아무것도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성 라우렌시오의 성화들은 십자고상을 관상하는 그의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
라우렌시오 수사는 파도바 대학교에서 철학과 논리학을 공부하고, 베네치아에서는 신학을 공부하면서 사제직을 위한 양성을 본격적으로 받았다. 그는 엄청난 지식욕과 그에 걸맞은 지력도 갖고 있었다. 성경을 너무 좋아하여 라틴어 성경은 물론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성경을 통째로 암기했다. 비범한 지적 능력에 힘입어 라틴어와 그리스어와 히브리어와 시리아어, 그리고 당시로선 새로운 언어인 프랑스어와 독일어와 스페인어까지도 유창한 수준으로 습득했다.
뛰어난 지적 능력뿐 아니라 성덕에 대한 염원도 남달랐다. 그는 묵상기도로써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열정을 불태웠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오! 우리가 이 사실을 심사숙고했더라면! 우리가 기도 안에서 하느님께 말할 때에 진정으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현존해주신다는 것을! 우리가 마음과 정신만으로 기도하더라도, 그분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정말로 들어주신다는 것을! 또 현존하시고 들어주시는 것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사실 우리의 간청들을 기꺼이 최대의 기쁨으로 응해주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이런 기도의 열정을 지니고 있었기에 부제이던 1582년에 이미 그는 베네치아에서 사순절 피정을 지도할 수 있었다. 참석자들에게 깊고 오랜 감명도 줄 수 있었다.
1582년 12월 18일, 그는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때부터 라우렌시오 신부의 손길을 기다리는 직무가 연이어졌다. 다양하고 뛰어난 언어 능력, 성경에 대한 영적 신학적 지식, 영적 비범함 그리고 건강한 신체는 당시 상황을 헤쳐 나가도록 주어진 은총이리라.
서품 후 1년도 지나지 않아 성경학 교수로 불림 받는 것을 시작으로 1602년에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의 총대리로 선출되었다. 그로써 그는 온 유럽에 걸쳐 퍼진 30여 개 관구의 9000명 형제들을 방문해야 했다. 그는 알프스 산맥을 맨발로 오가면서 모든 형제들을 격려하고 권고하고 바로 잡아주었다. 길고 거친 여행길에서도 단식과 금욕을 포함한 수도회의 모든 규칙을 엄격하게 지켰다. 뿐만 아니라, 어느 형제회에 아무리 늦은 시각에 도착했어도 밤기도를 바치기 위해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직책에 따른 특별대우는 어느 것도 거절하면서 다른 형제들과 똑같이 먹고 함께 설거지를 했다고 한다.
분열을 봉합하는 선교사
라우렌시오 신부가 활동하던 당시에 가톨릭교회는 마르틴 루터에 의해 촉발된 교회 분열로 인해 큰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 성경과 교부학에 정통하고 프랑스어와 독일어에 능통하다는 것은 가톨릭교회에서 갈라져나간 이들을 다시 돌려세우는 데 큰 무기가 되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지의 사람들을 다시 교회로 불러들이는 데 있어 카푸친 작은 형제회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거기에 라우렌시오 신부가 있었다. 그는 마르틴 루터가 문제 삼았던 모든 신앙조항에 대한 성경학적, 교부학적 근거를 대며 가톨릭 교리를 잘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총대리로 당선되기 3년 전인 1599년, 그는 오스트리아와 지금의 체코공화국 영토에 수도회를 설립하고 개신교의 맹공에 맞서기 위해 그 지역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있었다. 그는 12명의 형제들과 함께 비인과 프라하와 그라츠에 수도원을 세웠다. 그리고 프라하에서는 전염병 환자들을 돌보면서 주일이나 대축일에는 시민들에게 강론했는데, 그의 강론은 큰 효과를 냈다. 많은 미지근한 가톨릭 신자들이 신앙 열정을 회복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개신교 신자들이나 적개심을 품은 냉담한 가톨릭 신자들로부터는 비웃음이나 생명의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긴 수염과 보잘것없는 차림새와 맨발이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곤 했다. 그 결과 “늑대 수도승”이라는 놀림을 들었고, 프라하의 어떤 개신교 신자들은 그를 다리에서 강물로 밀어 떨어뜨리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다.
이처럼 분열과 혼란과 무지와 오해와 미움의 기운이 가득한 시대였지만 그의 노력은 큰 성과를 가져왔다. 이탈리아의 수많은 도시에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이탈리아 반도의 크고 작은 도시는 물론이요 유럽 전역이 그의 사목지가 되었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그의 사목 대상이 되었다.
방향이 뚜렷하고 계획적인 그의 설교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했으며, 가톨릭교회를 벗어나 프로테스탄트가 되었던 수많은 이들이 다시 돌아왔다. 능숙한 언어 능력으로 이탈리아 너머의 이교 지도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으며, 랍비들도 그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1592년과 1594년에는 로마에 사는 유대인들의 개종이라는 특별한 임무를 교황 클레멘스 8세에게서 받고는 로마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설교했다. 유창한 히브리어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예의바른 태도로, 그러면서 열정적인 자세로 성경을 해설함으로써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대인”이라는 착각을 줄 정도였다. 그는 유대인들의 개종을 위해서도 큰 노력을 기울였다.
하느님 말씀을 향한 사랑
라우렌시오 신부가 거둔 선교의 열매는 기도와 보속 그리고 여러 시간의 복음 묵상의 결과였다. 그는 긴 묵상을 거쳐 설교를 준비했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해석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볼 수 있게 해주시기로 그리스도께서 결심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그 사람의 눈에 진흙을 넣으셨습니다. 그 행동은 눈먼 사람들을 볼 수 있게 해주기보다는 볼 수 있는 사람들을 눈멀게 하는 일에 훨씬 더 잘 어울리는 행동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으심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신앙을 권하기보다는, 그분이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심을 믿고 있었던 사람들의 신앙을 파괴할 가능성이 더 높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탄과 싸우러 나서시고 세상을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참된 예배에로 돌리시려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심판하러 오실 때처럼 당신 능력의 무기들로, 그리고 변모 때에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을 때의 그 영광과 장엄으로, 그분께서는 그러한 일을 이루실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셨는데 도대체 누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분께서는 당신 승리가 더욱더 영광스러운 것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의 나약한 육신 안에서 사탄과 싸우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것은 흡사 무기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오른손이 묶인 채, 오직 왼손으로만 강력한 군대와 싸우는 것과 같았습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게 된다면, 그 승리는 더욱더 영광스럽게 여겨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신성의 오른손이 묶인 채로 악마에 대항하셔서 오직 당신의 나약한 인성의 왼손만으로 사탄을 이겨내신 것입니다.”
그는 하느님 말씀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사람이 하느님을 알고 사랑할 수 있도록, 지능에 빛이 되고 의지에는 불이 됩니다. 그 말씀은 주님 영의 은총의 삶을 사는 내적인 사람에게는 꿀보다 달콤한 빵이요, 포도주보다 또 우유보다 더 나은 물이 됩니다. 그 말씀은 고집스러운 악습으로 인해 굳어진 마음을 두드리는 망치이고, 육신과 세상과 마귀에 대항하여 온갖 죄를 죽여 없애는 칼입니다.”
성경을 통째로, 그것도 여러 언어로 암기했던 그 사랑은 성경에 관한 많은 저작을 남겼다.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은 말씀의 어머니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의 성소와 학생시절의 건강 회복, 히브리어에 대한 지식과 자신의 모든 성공을 성모님의 도움으로 여겼다. 그는 무엇이든 필요할 때마다 성모님께 달려가곤 했다. 수도회의 총대리로 선출됐을 때는 로레토에 있는 ‘성모의 성가정’ 성지로 갔었고, 임기가 끝났을 즈음에도 그곳으로 되돌아갔었다. 그는 양성시절 때부터 묵주기도와 성모님의 소성무일도를 매일 바치곤 했다. 그가 형제들에게 자주 했던 인사말에서도 성모님을 빠뜨리지 않았다. “Nos, cum prole pia, benedicat Virgo Maria!(당신의 효자와 함께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에게 강복하시기를)”
그가 남긴 800여 편의 강연과 강론들 중 상당수가 “하느님의 어머니”에 관한 헌신적인 글이다. 성모님의 원죄 없는 잉태, 승천, 구원 역사에서의 역할 등의 특전을 찬송하면서 그것이 말씀의 어머니로서 받은 선물이라고 말한다.
하느님의 사람, 교회의 사람
결코 길지 않은 생애 동안 어떻게 그처럼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원장으로, 총대리로, 교황사절로 중책을 수행하는 중에 교회 밖의 수많은 이들을 교회 안으로 데리고 오는 어려운 임무도 수행했다.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모든 이에게 도움을 주었다. 오스만 제국의 침략을 맞서서 진두지휘하여 승리한 것도!
라우렌시오 신부는 온 세상을 돌아다녔다. 이탈리아에 있는가 하면 독일에 있고, 스페인에 있었다. 세상사에 관해서도 그가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그럼에도 세상사가 그의 마음을 차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의 마음과 정신은 늘 하느님을 향해 있었다.
그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거룩한 미사는 지상에 있는 나의 하늘나라이다.” 그가 혼자 봉헌하는 미사는 예닐곱 시간, 때로는 아홉에서 열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12시간 동안 미사를 봉헌한 적도 있었다. 미사 때마다 엄청난 눈물을 흘렸으며, 그가 미사 중에 공중으로 뜨는 것이 여러 사람들의 눈에 목격되었다. “성변화와 영성체가 아주 깊은 감동 속에서, 대개는 관상과 황홀경 속에서 이루어졌다.”라고 증언했다.
바이에른의 어느 독실한 선제후는 라우렌시오 신부보다 더 훌륭한 친구이며 조언자를 찾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 거룩한 사제의 복사를 서는 것을 자신의 명예로 생각했다고 한다.
예순 살이 되면서 라우렌시오 신부도 모든 직무를 내려놓고 오로지 기도에만 전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 임무는 더 가중되었고, 더욱이 스페인의 왕을 만나기 위해 포르투갈의 리스본에 다녀온 후 그의 건강은 완전히 악화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1619년 7월 22일, 60년 전 이 세상에 태어난 바로 그날에 그는 저 세상으로 돌아갔다.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교회가 분열된 후 혼란의 시기에 이룬 큰 업적들에 의거할 때 라우렌시오 신부는 “교회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하느님께서 섭리로 일으켜주신 많은 뛰어난 사람들 중에서 참으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1783년 5월 23일 교황 비오 6세는 라우렌시오 신부를 복자로, 1881년 12월 8일 교황 레오 13세는 성인으로 선포했다(축일 7월 21일). 그의 탄생 400주년인 1959년 교황 요한 23세는 라우렌시오 신부의 열렬한 활동과 폭넓은 학식, 그리고 성경 주해와 신학과 설교에 관한 수많은 저작을 남겼다는 점에서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했다.
라우렌시오 성인의 시신은 스페인 국왕의 칙령에 따라 스페인 갈리시아 주의 비야프랑란카 델 비에르토에 있는 ‘맨발의 프란치스칸 수녀들’의 수녀원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