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마리아 출판사

코르토나의 마르가리타 성녀(1247-1297)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막달레나 성녀”로 불리는 코르토나의 마르가리타 성녀는 1247년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지방의 라비아노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부모는 매우 신심 깊은 신앙인이었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활발하고 총명했으며, 마르가리타 꽃처럼 매우 아름다웠다.
그렇게 구김살 없이 행복하게 살던 마르가리타가 열 살이던 해에 불행의 그림자가 이 가정에 내려앉았다. 엄마가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엄마의 죽음으로 이 가정은 크게 흔들렸으며, 마르가리타는 혼자 남겨졌다는 절망감에 감당하기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면서 1남1녀의 두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어려워 재혼했다. 그런데 새어머니는 다 큰 여자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뛰어나게 아름다운 마르가리타를 새어머니는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못살게 굴었다. 욕설과 매질이 끊이지 않았다. 마르가리타도 개성이 매우 강했기에 두 사람은 늘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무기력한 아버지와 자신을 괴롭히는 새어머니 밑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며, 자연히 신앙생활도 소홀해졌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어!’

아홉 해 동안 허락된 행복

그렇게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던 마르가리타를 구해준 이는 부유한 귀족 가문의 청년 아르세니오였다. 라비아노 인근에 그의 가문 소유지가 많았기에 그날 그곳을 지나던 아르세니오의 눈에 띈 것이다. 그는 너무나 아름다운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때 그녀는 열여섯 살이었다.
사랑과 정에 목말랐던 그녀는 그의 구애를 받아들였다. 그녀는 그와 함께 도망가기로 결심하고는 식구들이 잠들기를 기다려 집을 나왔다. 그리곤 그와 함께 말을 타고 라비아노를 떠나 몬테풀치아노로 향했다. 1263년이었다!
두 사람은 열렬히 사랑했다. 계모의 학대나 가난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과 사치스런 옷과 값진 보석이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녀는 더 이상 시골 소녀가 아니었다.
2년 후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도 태어났다. 그럼에도 결혼은 계속 미루어졌다. 아르세니오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결혼을 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녀가 하층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가문에서 반대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도 그녀를 귀족 청년을 유혹한 여자로 손가락질했다. 그래도 그녀는 축제와 만찬과 춤이 나날이 이어지고 친구들도 가득한 그 삶에서 행복을 느꼈다.
두 사람이 함께 산 지 9년째이던 1272년의 어느 날, 아르세니오는 애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그날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에 아르세니오는 라비아노의 소유지를 관리하며 거기서 멀지 않은 별장에서 마르가리타와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며칠 동안 마르가리타는 그를 애타게 기다렸지만 함께 갔던 개만 돌아왔을 뿐이었다. 개는 구슬프게 짖어대며 마르가리타의 옷을 물고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녀를 페트리냐노 델 라고의 트라지멘 호숫가로 인도했다. 거기 숲속에 아르세니오는 칼에 찔려 죽어 있었다. 시신은 이미 부패되어 처참한 상태였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그녀를 에워싸고 있던, 행복이라는 이름의 성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코르토나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원을 찾아가거라”

탈혼에 빠진 마르가리타 성녀.
성녀는 매일 이 십자가의 예수님 발치에서 그분과 함께했다.

마르가리타는 일곱 살인 아들과 함께 그 저택을 나왔다. 그 가문의 사람들에게 두 사람은 단지 창녀이며, 사생아일 뿐이었다. 그녀가 갈 곳은 아버지의 집이었다. 아버지는 처음 대면하는 손자와 딸을 너무나 반겼지만 새어머니의 경멸을 참을 수 없어 다시 집을 나왔다. 세상 천지에 머무를 곳이 없는 암담한 처지였다.
그런데 아버지의 농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 있을 때였다. 그녀는 안에서 들려오는 이런 말씀을 들었다.
“코르토나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원을 찾아가거라.”
그 순간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들을 데리고 코르토나로 떠났다. 그녀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전혀 다른 삶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스물다섯 살이었던 그녀는 코르토나에서 스물여섯 해를 살았다!
코르토나로 가는 길에 날이 저물자 레나이아 농가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 하룻밤을 기억하기 위한 기념비가 지금도 있다. 날이 밝자 두 사람은 마차를 타고 코르토나에 도착하여 베라르다 문을 지나서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그 누구도 두 사람을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훗날 코르토나는 마르가리타의 도시가 되었으며, 베라르다 문에도 이날을 기억하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그녀는 프란치스코 수도원을 찾아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원장 수사는 너무나 아름답고 젊은 여자가 회개의 삶을 살겠다는 자체를 믿을 수 없었다.
“부인, 당신은 우리 집에 머무르기에는 너무 젊고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베라르다 문 근처에는 당신을 맞아줄 누군가가 있을 겁니다. 베라르다 문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요?”
“방금 그 문을 지나왔습니다.”
“예, 거기서 10미터를 더 올라가면 아주 큰 집이 있습니다. 거기에 신심 깊고 경건한 두 여자 분이 살고 있어요. 그들은 미망인이고 그 집에는 방이 아주 많으니 거기에서 묵을 수 있을 겁니다. 대신 집안일을 좀 해주면 될 겁니다. 어서 가세요. 우발도 원장수사가 보냈다고 하십시오.”
고부 사이인 두 귀족 부인은 마르가리타와 아들에게 방 두 개를 내주었으며, 거기서 이 모자는 3년을 살았다. 부인들의 도움으로 아들은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며, 그리곤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수도자가 되었다. 마르가리타가 아들에게 쓴 편지가 아직 전해지고 있다.
“… 나의 아들아, 너의 기도는 항상 경건하고 열렬해야 할 것이다. 늘 악을 경계하고 원수의 여러 함정에 대비하여라. … 모든 악습으로부터 너를 보호하기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겨라. 내가 너에게 알려준 책들을 자주 읽고, 죽을 때까지 너의 곁에 보관하여라. 그 책에서 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완전하게 실천하여라.”

첫 번째 독방에서

마르가리타는 이 저택에서 자신의 방을, 후세인들이 “첫 번째 독방”이라고 부른 독방을 가졌다. 프란치스코 수도원과 성당이 가까운 이 방에서 그녀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시작했다.
그녀는 지운타 베냐티 수도신부를 고해사제로 소개받은 후 완덕을 향한 여정을 지도받았다. 지운타 신부는 그 모두를 기록하여 후세에 전해주고 있다.
그녀는 익히지 않은 거친 음식이나 삶은 야채로 연명했다. 빵과 고기와 유제품을 일절 금했다. 잠자리는 맨 땅이나 거친 돗자리에서 해결했다.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자신의 미모를 지우기 위해 얼굴에 고의로 상처를 내고 까맣게 그을렸다. 과거에 즐겼던 모든 것을 버렸다.
거기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매일 아침마다 그녀는 프란치스코 성당으로 가서 미사에 참례하고 성경을 읽으며 묵상에 잠겼다. 매일 그녀는 십자가의 예수님 발밑에 무릎을 꿇고서 예수님께 사랑을 고백하며 그분과 함께했다. 그런 그녀에게 예수님도 응답해주셨다!
어느 날 아침, 무명작가가 만든 그 나무 십자가의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저의 주님, 오직 주님만을 원합니다!”
이 대답에 예수님께서는 “나의 가난한 이여!” 하고 부르셨다. 그 후 그녀는 맨발로 8일 동안이나 고해사제를 찾아가서 통회의 눈물을 흘리며 총 고해성사를 받았다. 그런 후 성체를 받아 모실 때, 주님께서 너무나도 감미로운 목소리로 그녀를 불러주셨다. “나의 딸아!”
“오늘 드디어 예수님이 나를 딸이라고 부르셨다. 그렇다! ‘나의 딸아!’ 하고 부르셨다. 그분이 내 죄를 용서하셨다! 그분은 나를 사랑하신다! 나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날부터 그녀는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나서 영혼의 자유를 맛보면서 주님을 향한 영적 여정에 날개를 달 수 있었다. 그 날개는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이었다.

이탈리아 최초의 구빈원 설립

마르가리타는 프란치스코 제3회에 입회했다. 지운타 고해신부는 이렇게 기록했다.
“그녀는 순수한 정신과 불타오르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서 리날도 원장수사에게 두 손을 놓았다. 그녀는 영혼과 육신을 하느님께 봉헌했다. 그리고 간절히 원하던 프란치스코 제3회 의복을 입었다.”
그녀는 주인들의 호의 덕분에 그 저택의 독방에서 조금 더 고립된 독방으로 옮겼다. 첫 번째 독방에서 3년을 보낸 뒤였으며, 이 두 번째 독방에서는 13년을 기거했다. 그리곤 매일 독방에서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보속하고, 성당의 십자가 아래에서는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서 그분을 만났다. 그런 그녀를 그분은 또 다른 삶으로 이끄셨다!
고통과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이 그녀를 찾아와 도움을 청하고 기도를 간청했다. 결코 그녀가 먼저 시작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면서 ‘자비의 성모 마리아회’로 불린 신심 깊은 여자들이 그녀 옆에서 필요한 도움을 제공했다. 그 결과 이탈리아 최초의 구호시설 중 하나인 이 병원을 통하여 가난하고 병든 이들 안에 계시는 주님을 섬기게 되었다. 그녀는 직접 그들을 닦아주고 음식을 먹여주었으며, 그러기 위해 구걸도 마다하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잡는 데에도 그녀를 사용하셨다.
“정치인들과 행정관들은 부패하였다. 단지 야망과 명성과 부의 축적만을 원하고 있다. … 그들은 잔인하고 냉정하여 과부들과 고아들과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톱만큼도 동정심을 갖고 있지 않다.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 내가 너를 세상의 사막 안에 세워두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기도와 희생과 더불어 필요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주교에게는 겸손하게 편지를 올리고, 필요한 곳에서는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등으로 주님의 명령을 따랐다.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그에 따라 수많은 죄인들이 구원과 회개의 길로 들어섰으며, 코르토나 시와 그 주변까지 회개의 물결이 스며들었다.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대신보속

주님께서는 마르가리타 성녀를
"나의 소중한 딸"이라 하시고
"사랑한다."고 속삭이셨다.

마르가리타는 모든 죄인들의 죄를 대신 기워 갚고 싶었다. 모든 벌을 자청했으며 순교도 불사했다.
“더 이상 그들이 주님을 모욕하지 않도록 저를 나병환자로 만들어주세요. … 그들이 받아야 할 벌을 제가 대신 받게 해주세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순교가 아닌 다른 방법의 보속을 마르가리타에게서 바라셨다.
“너에게는 순교 대신에 경멸이 있을 것이다. 너는 모욕과 비방을 받을 것이다. 네 안에서 빛나는 나의 선물들을 보아라. 겸손한 마음으로 참회하는 영혼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들은 나를 구원자로 다시 인식할 것이다. 열렬하게 나를 사랑하고 한결같이 나를 섬길 것이다. 많은 이들은 너처럼 눈물과 열망으로 나를 다시 찾을 것이다.”
어느 해 성탄절에 주님께서 마르가리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죄 중에 있었을 때 너는 나의 종이었다. 너는 나의 여종이기에 고행을 행했다. 그러나 이제 은총으로 너는 나의 자매이며, 영원한 영광의 서약으로 나의 딸이 되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시듯, 주님께서는 자주 그녀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이시고 사랑의 표현도 직접 건네셨다. 주님은 그녀를 “나의 소중한 딸”이라 하시고, “사랑한다”라고 속삭이셨다.
자주 그녀는 이 세상의 모든 감각을 잃은 채 오직 그분께만 집중했다. 그런 만큼 악마의 시기와 증오의 표적이 되었지만 그 무엇도 주님과 그녀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아침에는 성당의 십자가 아래에서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던 중 통곡했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절절했던지 코르토나가 통회의 도가니가 되었다고 한다. 그날 저녁까지 그녀는 주님의 수난에 완전히 젖어 있었다.

생의 마지막 9년


이탈리아 코르토나에 세워진 성녀 기념 대성당. 마르가리타 성녀의 시신은 부패되지 않은 채 이 성당의 재대 아래에 안치되어 있다.

1288년 5월 1일 마르가리타는 16년간 살았던 귀족 저택에서 나와 좀 더 고립된 방으로 옮겨갔다. 성 바실리오 성당에서 가깝고, 요새 아래의 독방이었다. 주님과의 더 긴밀한 만남을 위해서였다. 거기서 생의 마지막 9년을 보냈는데, 주님께서는 그녀에게서 세상의 모든 것을 치우셨다. 그녀에게 남은 것이라곤 사람들의 몰이해와 악마의 시기뿐이었다.
“나의 딸아, 너는 영적으로 살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떼어졌다. … 너는 고통으로 나를 섬겨라. … 너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나의 도구이다. … 나는 네 안에 나의 감실을 두었다. 세상에 대해 완전하게 죽어라.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니 내 안에서 안식을 찾아라.”
그녀에게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의 건강은 급격하게 악화되어갔다. 온몸을 덮은 염증과 고열에 시달리면서 생의 마지막 17일 동안은 오직 성체만을 모셨다. 그녀의 간절한 염원은 육신에서 해방되어 주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었다.
마침내 마르가리타는 “주님의 숨결로 제게 입맞춤을 …” 하며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1297년 2월 22일이었다.
사후에 그녀에게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성녀 막달레나”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생전에서와 마찬가지로 사후에도 그녀의 중재로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다. 코르토나에 마르가리타를 기념하는 대성당이 세워졌으며, 그녀의 시신은 부패되지 않은 채 기념성당의 제대 아래에 안치되어 있다.
1728년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코르토나의 마르가리타를 성인으로 선포했다(축일 2월 22일). 마르가리타가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던 동굴 위에는 성묘 성당과 프란치스코 수도원이 세워졌다. 마르가리타 성녀의 성화에는 묵주와 채찍과 해골이 있고,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주로 담긴다. 때로는 성녀 옆에 개 한 마리가 등장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을 찾아주었던 그 개를 묘사한 것이다.
참조: 코르토나의 성녀 마르가리타(사무엘레 두란티, 프란치스코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