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마리아 출판사

안토니오 마리아 글라렛Antonius Maria Claret 성인은 1807년 12월 23일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작은 마을 사옌트에서 태어났다. 작은 직물 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후안 글라렛과 어머니 호세파 글라라 사이의 열일곱 자녀 중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신앙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한 글라렛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하느님의 존재와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강한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영원히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전율을 느꼈으며, 동시에 그들의 구원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글라렛이 11세 때 어느 주교님이 학교를 방문하여 글라렛에게 물었다.
“이 다음에 무엇이 되고 싶니?”
소년 글라렛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신부님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을 직물 기술자로 키우고 싶었기에 17세인 글라렛을 바르셀로나로 보내 기술과 업무 경험을 쌓도록 했다. 몇 년이 지나자 대규모 방직 회사로부터 입사 제안을 받았지만 그의 참된 기쁨은 세상에서의 성공에 있지 않았기에 고향으로 내려왔다.

“나는 홀로 그리고 걸어서 다녔다”

아버지의 뜻과는 다르게 글라렛의 마음에서는 어릴 때부터 품어온 사제의 꿈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틈틈이 라틴어를 공부했다.
그런 어느 날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루카 9, 25)는 복음이 글라렛의 귓전에 생생하게 울렸다. 그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로 결심했으며, 카르투시안 수도승이 되기로 했다. 하지만 가업을 잇지 않겠다면 교구 사제가 되라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1829년 교구 신학교에 입학했다.
신학교 생활을 1년 보냈을 무렵에도 수도성소를 포기하지 못한 글라렛은 근처의 봉쇄 수도원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도중에 그의 힘으로는 도저히 뚫고 갈 수 없는 엄청난 폭풍을 만나 돌아서야 했다.
1835년에 글라렛은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리고 고향에서 사목생활을 시작했지만 그의 사도적 열정을 발산하기엔 제한과 제약이 많았다. 글라렛 신부는 해외 선교의 꿈을 펼치기 위해 로마로 가서 예수회에 입회했는데, 수련기에 이상한 병에 걸려 다시 스페인의 고향으로 돌아와야 했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두신 뜻은 다른 데 있는 게 분명했다.
1840년부터 글라렛 신부는 카탈루냐 지방의 한 본당에서 다시 사목을 시작한 후 지역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나는 홀로 그리고 걸어서 다녔다.”는 그의 말대로 그는 걸어서 곳곳을 다니며 탁월한 강론 솜씨로 많은 사람을 매료시켰으며, 어떤 날에는 하루에 일곱 번이나 강론을 하고 10시간 동안 고해성사를 집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성체와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늘 강조했으며, 성모님께 자신의 사목을 봉헌했다. 묵주가 그의 손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1842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글라렛 신부에게 ‘성좌 파견 선교사’라는 칭호를 하사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글라렛 신부에게 찾아들었다.
1847년 글라렛 신부는 동료 사제 몇 명과 함께 출판 단체를 조직했다. 복음의 메시지를 광범위하게 전하는 수단으로 출판매체가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며, 책과 팸플릿 등을 간행했다.

티없으신 성모 성심의 아들

1849년 7월 16일 스페인 비크Vich 신학교의 한 교실에 안토니오 마리아 글라렛 신부와 동료 사제 다섯 명이 모였다. 글라렛 신부의 열성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혼자의 힘으로는 선교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글라렛 신부와 동료들은 그 공동체를 티없으신 성모 성심께 봉헌했으며, 그때부터 “티없으신 성모 성심의 아들들의 수도회”(CMF) 또는 글라렛 선교 수도회가 첫 발걸음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티없으신 성모 성심의 아들인 선교사는 사랑으로 불타는 사람이어야 하며, 그래야 가는 곳곳에서 사랑의 불꽃을 피어오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수도회 설립 이듬해인 1850년 스페인의 이사벨라 2세 여왕의 요청으로 글라렛 신부에게 새로운 소명이 부여되는데, 쿠바의 산티아고 대주교로 임명된 것이다.

쿠바의 영적 아버지

Antonius maria claret 글라렛 대주교는 두 달이 넘는 여정 끝에 쿠바 제도에 도착하여 성모님께 자신의 직무를 봉헌하고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다. 인간 발전의 모든 차원에 관심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조건을 개선하는 데 탁월한 창의성을 발휘했다. 그는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한 상업·직업 학교를 운영하고 가난한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신용협동조합도 만들었다. 또한 직접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농사법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저술했으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돌보는 데 힘을 쏟았으며, 인종 차별주의에 항거했다. 이 과정에서 글라렛 대주교는 수많은 반대자들의 표적이 되었으며, 생명의 위협까지 받기도 했지만 그것에서 기쁨을 느꼈다.
“내가 그토록 원하였던 것을 이룬 것을 알고서 내 영혼이 느꼈던 환희와 기쁨과 즐거움은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었다. 내가 원하였던 것이 바로 예수님과 성모님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피를 흘리는 것이었으며 복음의 진리들을 나 자신의 피로 증명하는 것이었다.”
쿠바에서 지낸 6년여 동안 글라렛 대주교는 광활한 관할 구역 전체를 세 번이나 순회했다. 그러면서 10만 명의 사람들에게 견진성사를 주었고, 혼인성사를 9천 회나 주례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신학교를 개혁하고 성직자 쇄신도 추진하였다.

영원한 선교사

1857년 스페인의 이사벨라 2세 여왕은 쿠바에 있는 글라렛 대주교를 자신의 고해 사제 겸 왕실의 영성 지도자로 불러들였다. 글라렛 대주교는 순명의 차원에서 이 부르심을 받아들여 여왕을 모시면서도 복음 선포의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스페인 전역의 가난한 사람과 죄수들과 병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피정 지도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목 활동을 전개했다.
당시에 스페인 사회는 내란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고, 종교 박해로 수백 명의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목숨을 잃고 수도회가 문을 닫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글라렛 대주교는 여왕의 고해사제로 11년을 지내는 동안 반성직주의자들로부터 온갖 중상모략과 비방을 들어야 했다.
1868년 급진주의자들이 혁명을 일으켜 이사벨라 2세 여왕을 폐위시키자 글라렛 대주교는 왕실 가족을 모시고 프랑스로 옮겨갔다. 거기서도 그는 복음 선포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869년 12월 8일 전 세계의 주교 7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막이 장엄하게 열렸다. 글라렛 대주교도 그 일원으로 참석했으며, 그 이듬해 5월 31일 교황의 무류성을 옹호하는 설교로써 이것이 교회의 가르침으로 정립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글라렛 대주교는 공의회가 폐막한 후에도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프랑스로 갔다. 그리고 1870년 10월 24일 스페인 국경 부근인 프랑스 퐁프로이드에 있는 시토 수도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1934년 2월 2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50년 5월 7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축일 10월 24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요합니다

안토니오 마리아 글라렛 성인의 사도적 성공의 열쇠는 자신의 표현대로 사랑이었다.
“선교사에게 가장 필요한 미덕은 사랑입니다. 총을 발포하기 위해서는 화약의 불꽃이 필요하듯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에도 사랑이 필요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총알을 손으로 던진다면 아주 미약한 흔적만을 남길 것입니다. 반면에 똑같은 총알이라도 뒤에 장전된 화약의 힘을 빌린다면 어떠한 목표를 파괴할 만한 가공의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도 총알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불타오른 선교사에 의해 전해질 때 그것은 기적들을 일구어낼 것입니다.”
“사도들은 성령으로 불타올라 온 세상을 두루 다녔습니다. 사도적 선교사들도 같은 불로 타올라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고자 북극에서 남극까지, 세상 한 끝에서 그 극변에까지 이르렀고 또 이르고 있으며, 장차 이를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요합니다.’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자신들에게 응당히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를 강요하여 힘차게 달리게 하며 거룩한 열성의 날개로 날아가도록 고무시킵니다.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큰 열성을 가진 사람은 더욱 높은 사랑으로, 더욱 높은 사랑의 단계에 따라 사랑하며, 그 사랑이 크면 클수록 더 큰 열성으로 강요됩니다. 어떤 이에게 열성이 없다면 그것은 마음 안에 사랑의 불이 커져버렸다는 확실한 표시가 됩니다. 한편 열성을 지니는 사람은 그의 사랑에 한계가 없는 만큼 가능한 온갖 수단을 써서 하느님이 현세와 후세에서 언제나 알려지시고 사랑받으시며 섬김 받으시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되도록 힘씁니다.
그런 사람은 이웃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합니다. 모든 이들이 현세에서 기쁘게 살고 후세에서 행복하고도 복되게 살기를 원하며 또 그렇게 되도록 노력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구원을 받고 아무도 영벌을 받지 않으며, 아무도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으며, 잠시나마 아무도 죄악에 머물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사도들에게서나 사도적 정신을 가진 사람에게서 이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자주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마리아의 티없으신 성심의 자녀는 사랑으로 불타는 사람이고, 가는 곳곳마다 열기를 주는 사람이며, 온 세상이 하느님의 사랑의 불로 타오르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되도록 있는 수단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를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결핍은 그에게 기쁨만 가져다줄 뿐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 그것에 달려듭니다. 중상모략을 기꺼하고 고통의 시련 가운데 즐거워합니다. 그는 일하고 고통당하면서도 항상 하느님의 가장 큰 영광과 영혼들의 구원만을 찾는 데에 있어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본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