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살레시오Franciscus Salesius 성인은 1567년 8월 21일 사보이 왕국의 신실한 가톨릭 귀족 가문에서 아버지 프랑수아와 어머니 프랑수아즈 사이의 여섯 형제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주. 그 당시는 현재의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북부 지역으로 구분되지 않았고 사보이 왕국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행정관으로 키우려고 아들이 어릴 때부터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프란치스코는 지방의 학교를 마친 후 1582년부터 파리로 가서 예수회의 클레르몽 대학과 소르본 대학교에서 수사학, 철학 및 신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이 기간에 신앙의 일대 위기를 겪게 되는데 칼뱅의 운명 예정설에 휩쓸렸던 것이다. 여기서 프란치스코가 태어난 당시의 교회 상황을 간략하게 살펴본다.
교회 일꾼으로의 준비
1517년 독일의 마르틴 루터 신부가 대사의 원칙과 실천사항에 대하여 “비텐베르크 95개 조항”으로 반박하고 가톨릭 교회의 성사와 전통적인 가치들을 부정하면서 시작된 종교 개혁은 독일을 넘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수많은 신자들이 가톨릭 교회에 등을 돌렸고,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교회와 수도원의 울타리를 떠나가는 일도 적지 않았다.
스위스 지역은 가톨릭 신부였던 울리히 츠빙글리에 의해 1522년부터 종교 개혁이 시작되었다. 1531년 츠빙글리가 전사한 후 칼뱅의 활약으로 제네바는 “개신교의 로마”라는 명성을 들을 정도로 개신교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독일 루터교회와 구분되는 “개혁 교회”를 이루었다. 전 유럽에서 많은 프로테스탄트인이 제네바로, 개혁 교회로 모여들었다. 그러면서 제네바의 칼뱅주의는 유럽에 빠르게 전파되었으며, 루터주의보다 더 영향력 있는 정치적 세력을 형성하였다(함께 읽는 세계 교회사②, 전수홍, 67쪽 참조).
운명 예정설은 칼뱅 신학의 특징 중 하나로서, 인간의 구원과 단죄는 그의 행적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예정되어 있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프란치스코도 당시에 만연하던 칼뱅 신학의 물결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는 당대의 신학자들과 운명 예정설에 관해 토론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가도록 예정되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깊이 빠지면서 큰 고통을 겪었다. 그때까지의 신앙생활에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생테티엔데그레에 있는 기적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던 중 그는 약속했다, 생명이 끝나는 날까지 정결을 지키며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봉헌하겠다고!
“주님,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저는 주님을 사랑하겠나이다. 영생을 누리며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이 생에서라도 저는 주님을 사랑하겠나이다.”
그 순간 놀랍게도, 그를 덮고 있던 검은 구름이 일시에 사라지고 평화의 감미로움이 그를 휘감았다!
1588년부터는 이탈리아에 있는 파도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유명한 법학부가 있는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기를 원한 아버지의 뜻을 따른 것이다. 그는 법을 공부하는 동시에 저명한 신학자이자 예수회 회원인 포세비노(1534-1611)의 도움으로 신학도 공부하면서 그에게서 영적 지도도 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어 점점 커져갔던 사제성소 때문이었다.
1592년 25세의 나이에 그는 법학 박사가 되었다. 동시에 법률가 자격과 상원의원 제의를 받았으며, 청혼도 받았다. 아들의 성공을 바라는 아버지의 힘이 작용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는 법률가 자격을 제외한 다른 것을 거절하면서 성직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아버지의 강한 반대에 부딪힌 것은 당연했다. 그러자 제네바 교구장인 그라니에 주교가 나서서 주교 다음의 고위 성직자 직위인 교구 참사위원직을 프란치스코에게 주면서 그의 아버지도 뜻을 꺾었다.
1593년 12월 18일 지금의 프랑스 안시에서 프란치스코는 사제 서품을 받았다.
교회를 세우는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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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경단의 제단화 |
그때 제네바 교구의 주교좌는 안시에 있었다. 종교 개혁으로 “개신교의 로마”가 된 제네바를 프로테스탄트에게 내어주고 안시로 옮겼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신부는 사도적인 열정에 불타 강론과 성사를 통하여 신자들을 일깨우는 데,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데 열성을 다하였다.
1594년 샤블레 지방에서 선교할 사제를 구할 때 그는 즉시 자원했다. 그곳은 약 50년간 칼뱅주의자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가톨릭 신앙이 금지되고 프로테스탄트가 강요되던 곳이었는데, 그 얼마 전 사보이가 되찾았던 것이다. 그는 암살자와 칼뱅주의자들의 끊임없는 공격도 개의치 않고 지역 전체를 찾아다니며 열정과 학식, 친절과 성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시에 칼뱅주의자들과 맞섰다. 찢어지고 갈라진 교회를 다시 깁고 메우며, 휘청거리는 교회를 똑바로 세우려는 그의 열정적인 투신은 결국 7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가톨릭 교회로 돌아오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5년 동안의 선교로 이룬 성과였다.
이에 그라니에 교구장은 당사자의 사양에도 불구하고 1599년 5월 22일 프란치스코 신부에게 주교 서품을 주고 그를 부주교로 세웠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주교를 교구장을 대신한 교황청 정기 방문자로 로마로 보냈다. 그때 교황 글레멘스 8세는 개인적인 호기심에, 추기경단 앞에서 프란치스코 신임 주교의 학문과 신앙을 시험해 보았다.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그를 흡족하게 여기며 교황은 이렇게 축복해주었는데, 그 후 말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대의 우물에서, 그대의 살아있는 샘에서 물을 마시게. 그대의 물이 솟아나오고, 그 물은 온 세상 사람들의 갈증을 채워줄 물이 되기를 기원하네.”
교회를 꽃피우는 일꾼
1602년 그라니에 주교가 세상을 떠나자 프란치스코 주교는 제네바 교구장이 되었다. 그해 12월 8일에 착좌식이 거행되었다. 교구장으로서 그가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모든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내면에 정립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신자들의 신앙교육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고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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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가 기도용으로 사용하던 장궤들 |
프란치스코 주교는 험한 산 속에 흩어져 있는 본당들까지 교구 내의 모든 본당을 끊임없이 순회하면서 미사를 봉헌하고 강론하며 고해성사를 주고 교리를 가르쳤다. 또한 그는 사제단을 쇄신하고 양성하기 위한 규칙을 만들었으며, 자주 사제들을 두루 방문하여 친교를 맺고 그들이 사목에 충실하도록 격려했다. 수도 공동체들의 쇄신도 이끌고 독려했다.
프란치스코 주교는 가난한 이들을 향한 사랑의 베풂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그 스스로 의식주에서 극도로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 가난한 이들에게 더 나누어주었다.
한 사목자의 헌신과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프로테스탄트로 인해 황폐했던 제네바 교구가 가장 열심하고 모범적인 교구가 된 것이다. 그의 열정은 제네바 교구 밖으로까지 퍼져나갔다. 감동적이며 알아듣기 쉬운 그의 강론은 신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요안나 프란치스카 샹탈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1604년 부르고뉴의 수도인 디종에서 프란치스코 주교가 강론하는 것을 들으며 요안나 F. 샹탈(1572-1641, 성녀, 축일 8월 12일)은 자기 생애의 전환점이 될 정도로 큰 감동을 받았다. 그녀는 어린 자녀 네 명을 둔 젊은 남작 미망인이었다. 그 첫 만남을 계기로 프란치스코 주교와 샹탈은 영성 지도자와 제자가 되었으며, 교회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영적 우정을 꽃피웠다. 1607년 설립된 성 마리아 방문 수녀회는 그 우정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샹탈은 수도생활을 갈망하면서도 자녀가 있는 기혼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했던 자신의 경우를 보며, 하느님께 전적으로 봉헌하며 살고 싶은 미망인들이나 기존 수도회의 엄격한 육체적 규율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여성들을 위한 성 마리아 방문 수녀회를 프란치스코 주교와 함께 설립했다.
1618년 11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프란치스코 주교가 업무 때문에 파리에 머물 때였다. 그의 강론을 들으려는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며 매일 성당을 메웠다. 그들은 열광적으로 환호하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이처럼 거룩하고, 사도적인 강론은 결코 들어본 적이 없다.”
“예수님, 저의 하느님, 저의 전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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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경당(이탈리아 토렌스) |
1622년 프란치스코 주교는 사보이 왕실을 안내하여 프랑스를 방문한 후 돌아오는 길에 리용에 있는 성 마리아 방문 수녀회에 들렀다. 거기 정원사의 집에 있는 작은 방에서 머물렀는데, 12월 27일 갑자기 뇌일혈을 일으켰다. 병자성사를 받은 후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예수님, 저의 하느님, 저의 전부여!”라는 기도를 계속 되뇌다가 다음날인 12월 28일 이 세상을 떠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리며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고 한다.
리용의 사람들은 프란치스코 주교의 유해를 자신들 가까이에 모시려고 했지만 심장은 리용에, 유해는 1623년 1월 안시로 옮겨져 지금도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1662년 1월 8일 교황 알렉산데르 7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주교를 복자로 선포했는데, 그것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된 첫 번째 공식 시복식이었다. 1665년 11월 19일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1877년 11월 16일 교황 비오 9세는 그를 교회 학자로 선포했다. 또한 교회는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성인을 청각장애인의 수호성인으로(1854년), 작가와 언론인의 수호성인으로(1923년) 선포했다.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성인은 종교 개혁자들이 들어 올린 깃발이 가톨릭 교회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던 시대에 태어나 성장했다. 그런 까닭에 교회의 일꾼이 된 다음에는 그들 종교 개혁자들을 대적하여 가톨릭 교회를 구하고 다시 세우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그는 반종교 개혁 지도자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으며, 따를 사람이 없었던 그의 지혜와 지식은 만인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그야말로 그는 진리에 목말라하고 진리의 실체를 제대로 모른 채 갈팡질팡하는 온 세상 사람들의 갈증을 채워주는 물이 되었다. 분열과 갈등이 유럽 전체를 휩쓸던 시대에 그 틈을 봉합하는 하나의 거대한 세포가 되었다.
“현대 영성의 아버지”
“근대의 성인들 중 가장 위대한 인물” 또는 “17세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영성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친 인물들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는 점에서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을 “현대 영성의 아버지”로 칭할 수 있으리라.
1619년에 출판된 그의 저작 <신심 생활 입문>은 자기 직업에 종사하며 가족과 함께 세속에 머물면서 경건한 생활을 하려고 애쓰는 평신도들에게 주는 영적 교훈을 담고 있어, 평신도 영성에 관한 최초의 글로 꼽힐 수 있다.
<신애론>은 영혼이 타락한 상태에서 그리스도교 완덕 및 성덕을 구성하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나아가는 영혼의 진보를 위한 방법과 실제적 체험을 서술하고 있다.
<논박>, <성 십자가의 깃발을 지킴>, <영적 담화>, <강론> 그리고 상당수의 논문과 단문들이 있다. 신자 개개인의 영혼을 돌보는 중 쓴 2100여 통의 편지도 전해진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영성은 수도회를 통해서도 계승되고 있다. 그가 세운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 외 재속 사제회, 평신도회, 수도회들이 설립되었다. 안시에 세워진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선교회, 요한 보스코 성인이 세운 살레시오 남녀 수도회가 대표적이다.
그가 남긴 저작들 중 <신심 생활 입문>의 한 단편에서 그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본다.
“하느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 그 종류를 따라 열매를 맺을 것을 초목에게 명하셨다. 이와 같이 하느님은 또한 그 교회의 생활한 초목인 신자들에게 그 처지와 각자 맡은 직분에 따라 각각 신심의 열매를 맺기를 설명하신다. 귀족과 직공, 왕족과 노복, 과부와 주부, 소녀들의 차이에 따라 그들의 신심은 각각 달라야 한다. 또 한층 이것을 개인의 능력, 일, 직무에 맞추어야 한다. 필로테아여, 주교가 샤르트르 수도회의 수사처럼 관상적 독수자가 되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만일 가정을 가진 자들이 카푸친회 수사들처럼 금전을 소홀히 여기거나, 또는 직공이 수도자처럼 종일 성당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든지, 또는 수사가 주교처럼 언제나 타인을 위해 분주히 돌아다닌다면, 이런 신심은 참으로 우습고 질서를 뒤집으며 또한 견디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착오는 극히 많다. 따라서 세속은 참된 신심과 그릇된 신심을 구별치 않고 또는 구별하려고도 않으며 신심을 배척하고 이를 비난한다. 그러나 이런 비난과 배척은 위에 말한 그릇된 신심에 한해서만 말해야 할 것이다.
아니, 필로테아여, 진정한 신심은 아무것도 손상치 않고 오히려 만사를 완성시킨다. 자기의 정당한 직무를 거스르는 자의 신심은 확실히 그릇된 신심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꿀벌은 꿀을 마실 때 조금도 꽃을 상하지 않게 하며 꽃은 이전의 아름다움을 조금도 잃지 않는다고 한다. 참된 신심은 이보다 더 어떠한 직무나 처지도 손상치 않을 뿐더러 오히려 이를 아름답게 꾸민다. 보석을 꿀에 담그면 그 성질에 따라 광채를 더한다고 한다. 그와 같이 어떤 사람도 그의 경우를 신심과 합치시키면 그의 경우는 일층 더 아름다워진다. 가정의 평화는 커지고 부부간의 애정은 깊어지며, 임금께 대한 충성은 두터워지고 각자가 맡은 일은 유쾌하고 즐거워진다.
신심 생활이 군인들의 병영, 직공들의 공장, 제왕의 궁정, 결혼한 자들의 가정에 존재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유설이며 이단의 교설이다. 필로테아여, 관상적인 신심이나 수도원식 또는 수도자적 신심이 이런 이에게 전연 맞지 않을 것은 말할 여지도 없지만, 위에 말한 세 가지 신심 외에 세속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완덕으로 인도하는 신심의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든지 완덕의 생활을 구할 수 있고 이것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