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 제르트루다Gertrude the Great 성녀는 신비적인 감수성, 신학적인 섬세함, 깊은 영성으로 大 데레사 성녀와 함께 “위대한”大, Great이라는 칭호를 부여받게 된 단 두 여성이 되었다. 스페인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와 비교하여 “독일의 데레사”라고도 불린다.
“위대한 제르트루다” 성녀는 1256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에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부모와 출생지에 관해서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섯 살이던 1261년 아이슬레벤에 있는 헬프타 시토회 수녀원 학교에 입학하여, 원장 수녀의 동생이며 수련장인 마틸다 수녀(+1298년, 성녀)의 지도로 교육을 받았다. 이렇게 이른 나이에 세상에서 분리되어 수녀원에서 살게 된 데는 주님의 뜻이 숨어 있었다. 후일 주님께서 직접 제르트루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주셨다.
“나는 너를 나의 거처로 삼았다. 내가 너의 모든 사랑스러운 면모를 이루었으며 그 사실이 기쁘기 때문이다. 너를 가족과 친지들에게서 멀어지게 한 이유는 네게서 인간적인 감정을 덜어내고 네가 오로지 나의 사랑만을 갈구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제르트루다는 수도복을 작게 줄여 입어야 하는 어린아이 시절부터 자기 또래의 놀이에는 흥미가 없었고 혼자 있는 것을 더 좋아했다.
열다섯 살 때 제르트루다는 학교 교육을 마치고 주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봉헌하고자 시토회 수녀원에 입회했다. 그리고 타고난 지적 열망과 지능으로 성인들의 영성, 음악, 문학, 문법학, 예술 등에 능통하게 되었으며, 특히 라틴어에 정통하여 수녀원 내의 필사실Scriptorium에서 일했다. 그러나 세속 학문에 빠져들고 자신의 지성에 의존하게 되면서 급기야 1280년 대림 시기에는 모든 것에 공허함을 느끼면서 영성생활에 큰 위기를 맞기도 했다.
신랑 그리스도, 신부 제르트루다
1281년 1월 27일 끝기도를 남겨둔 시각, 예수님께서 16세가량의 젊은이의 모습으로 제르트루다에게 나타나셨다. 후일 제르트루다 성녀는 이렇게 기록했다.
“황혼이 아름다운 그 시간에, 머리를 들고서 주님 외에 누구를 바라보겠나이까? 저의 사랑이신 분이여, 저의 구원자시여, 주님께서는 저에게 아름답고 겸손한 열여섯 살 청년으로 나타나셨나이다. 주님께서는 제 앞에 서시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나이다. ‘구원이 가까이 왔다. … 내가 그대를 구원하겠노라. … 나의 원수들로 인해 너는 세상일에 관심이 많구나. 나에게 돌아오너라. 내가 그대를 따뜻하게 맞이하리라.’ 바로 그 순간부터 제 영혼은 밝아지고, 제 마음은 가라앉았나이다. 세속적인 독서에 대한 지나친 열정은 주님의 강력한 은총으로 인해 말끔히 사라지고 모든 허영에서 멀어지게 되어 그때까지 저를 유혹했던 모든 것을 버리게 되었나이다. 주님만이 제 영혼을 기쁘게 하나이다.”
이날 주님께서는 지성에 매몰된 제르트루다의 영적 상태를 책망하면서 동시에 그녀를 위로해주셨다. 그분은 그녀의 손을 잡아주시면서 온통 가시로 에워싸여 있어 그분과의 사이를 가로막았던 그녀의 영혼을 구해주셨다. 주님의 손을 잡는 그 순간 제르트루다는 주님의 손에서 이 두 가지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즉 “악한 원수들이 저지른 모든 죄를 없애는 성흔”을 인식할 수 있었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써 우리를 구하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심을 인식할 수 있었다.
이 만남과 결합은 제르트루다의 내적 삶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써 주님은 제르트루다의 신랑, 제르트루다는 주님의 신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신랑과 신부는 신랑이 신부를 이 세상에서 불러가는 그날까지 20년 동안 매일 만남과 결합을 반복하면서 사랑의 절정을 이어나갔다. 그러면서 신부는 신랑과의 결합을 통해 삼위일체의 삶을 깨닫는 경지까지 나아갔으며, 더욱이 1284년에 신랑은 신부의 영혼의 심장에 당신의 심장에 있는 것과 같은 거룩한 상처를 새겨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주님에게서 받은 사랑은 세상으로 확산되었다. 제르트루다는 외형적으로는 철저한 은수생활을 지향하는 시토회의 수도자였지만 주님의 사랑을 수도원의 벽을 넘어 세상으로 퍼뜨렸기 때문이다. 그녀가 계시에서 본 하느님은 귀부인들을 거느린 궁중의 황제일 뿐 아니라 무장한 장정들을 거느린 황제였다. 그때 그녀가 깨달은 것은 “하느님은 활동적인 분”이시며, 깊은 기도를 통하여 주님과 일치하는 삶은 더할 수 없이 교회에 커다란 사도적 힘을 주지만 사랑과 겸손이 전제된 사도적 활동도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실천이 되고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기회가 된다는 점이었다.
“아, 신랑이 오신다!”
1288년 제르트루다는 심한 병을 앓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합병증이 되면서 치유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그때부터 긴 투병생활에 들어가게 되었다. 성 마르티노 축일에 환시 중에, 병으로 격심한 고통에 시달리던 제르트루다가 언제 세상을 떠날 수 있는지 여쭈었을 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네가 선택하여라. 네 육신을 지금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네가 원한다면 너의 부족과 과실을 만회하기 위해 오랫동안 병상 생활을 할 수도 있다.”
제르트루다는 주님의 뜻을 따랐다.
“저의 하느님, 주님의 뜻대로 하소서. 저의 최대의 기쁨은 이 육신으로부터 해방되어 주님과 합일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공심판까지라도 이 땅에 머물며 주님을 찬양하면서 극도의 비참함이라도 견디겠습니다”(「하느님의 사랑의 사자」 5권 29장).
1302년 11월 16일 헬프타의 수녀원에서 제르트루다는 “아, 신랑이 오신다!” 하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나 신랑이신 분의 품에 들었다.
우리 교회는 제르트루다를 공식적으로 시성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례의 기도, 독서, 찬가에서 제르트루다를 공경할 수 있다는 공인이 1606년 교황청에서 내려지면서 제르트루다는 거룩한 품위에 올려졌다. 1738년 교황 글레멘스 12세는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성녀와 구별하고 그의 영적인 깊이를 재평가하면서 헬프타의 제르트루다 성녀에게 “위대한Great, 대, 大 ”이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하느님의 사랑의 사자使者
제르트루다 성녀를 다섯 살 때부터 지도했던 뛰어난 신비가인 마틸다 성녀에게 어느 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감실이나 제르트루다의 마음 안에 머문다. … 제르트루다는 나의 자유로운 영혼이다.”
이 말씀대로 주님과 제르트루다 성녀는 완전한 합일에 이르는 신적인 사랑을 나누었으며, 성녀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기리는 영원한 찬가”가 되었다. 성녀는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모든 신비적 은총을 기록하여 세상에 내놓았는데 바로 「하느님의 사랑의 사자使者」, 「영성수련」 등이 그것이다. 다른 모든 영혼들에게도 전하여 주님의 사랑을 깨닫도록 하라는 그분의 뜻이었다. 이 기록들에서 제르트루다 성녀가 주님과의 합일에 이른 길과 경지를 아주 일부나마 엿볼 수 있다. 성녀는 특히 전례, 성체성사, 성경, 영적 독서 그리고 기도라는 길을 통해 주님께 더 높이 올라갔으며 더 깊이 들어갔다.
제르트루다 성녀는 전례 중에 주님의 모습을 보거나 삼위일체 하느님과 포옹하거나 계시적 조명을 받는 체험을 자주하였다. 대림과 성탄, 사순과 부활, 성모님 축일과 같은 중요한 전례 시기에는 주님과의 내밀한 일치가 더 격렬해졌으며 육신의 질병도 이를 막지 못했다. 이렇게 성녀는 전례 안에서 주님의 현존을 강하게 느꼈기에 전례가 주님과 합일할 수 있는 확실한 길이라고 믿었다. 특히 성체성사는 전례 중에서도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합일되는 가장 빠른 길임을 체험으로 확신했다.
전례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그날 제르트루다 성녀는 건강이 좋지 않아 공동체 전례에 참여할 수 없어 주님의 가슴에 자신의 머리를 기대고서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때 주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첫 번째 맥박은 죄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바치고, 두 번째 맥박은 의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바쳐라.”
제르트루다 성녀는 영적 체험을 항상 성경에 비추어 해석하면서 인간적인 현실을 무시하는 과장된 감정이나 상상에 빠지지 않았다.
제르트루다 성녀는 “예수 성심을 공경한 첫 인물” 또는 “예수 성심의 신학자”로 불릴 정도로 주님의 마음에 대한 강렬한 사랑을 체험했고 그 사랑에 헌신했다. 주님께서 성녀의 스승 수녀에게 직접 “나는 감실이나 제르트루다의 마음 안에 머문다.” 하고 말씀하실 정도로 성녀의 마음은 주님께서 머무시는 안식처였으며, 그분의 인성과 신성이 함께 만나는 가교였다. 그리고 성녀는 그분의 성심에 난 상처에 늘 집중했는데, 그 상처를 깊이 느낄 때마다 자신의 성덕이 성장하는 변화의 힘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성녀의 삶 전체는 주님의 성심께 봉헌되었다.
제르트루다 성녀는 여러 성덕 중에서 순명의 성녀로 꼽힌다.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한 가장 어려운 길이지만 가장 우선적인 길인 완전한 순명을 행하기 위하여 모든 고통을 감수하면서 자신을 완전히 봉헌하여 주님의 뜻을 무조건 이행하였기 때문이다. 성녀는 어느 순교자 축일에 성무일도를 바치던 중 주님에게서 이 말씀을 들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순명으로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어떤 이에게는 병들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개인의 십자가가 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이것을 받아들이고 견뎌야 한다.”
제르트루다 성녀가 어느 날,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쭈었을 때 주님께서는 “내 어머니를 보아라. 어머니를 진정으로 찬미하도록 애써라.” 하고 대답하셨다. 시험 중에 주님의 도움을 간청했을 때는 “지극히 자비로우신 내 어머니에게 의탁하여라. 나는 내 어머니를 통하여 너에게 은총을 준다.”고 하셨다. 성녀가 계시를 통해서 보고 들은 바에 의하면, 주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에게 지극한 공경을 표하셨고 사람들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셨다. 그에 따라 성녀는 주님과 함께 주님의 어머니께도 지극한 공경을 바치며, 성모님을 주님의 길을 따르는 데 있어 지도자이며 간구자로 모셨다. 고통 앞에서도 순명과 겸손을 잃지 않았던 성모님을 최상의 모범으로 삼고 따르면서 주님의 사랑스런 거처가 되기를 간구하는 것이 주님과 성모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앞의 책 4권 48장).
어느 날 성녀가 성모님께, 주님께서 기뻐하실 덕으로 자신의 가슴을 채워달라고 간청했다. 성모님께서는 허리를 굽히시며 제르트루다의 가슴에 사랑의 장미와 순결의 백합과 순명의 해바라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꽃들을 심어주시며 당신께 간구하는 이들을 얼마나 빨리 도와주시는지 보여주셨다.
신적 사랑에 대한 권고
“주 하느님이시여, 저의 창조주시여, 제 영혼이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제 영혼이 주님을 찬미하게 하시고, 제게는 아무 공로가 없어도 주님의 영원한 사랑이 저를 감싸준 주님의 그 자비가 저의 내심으로부터 주님을 찬양하게 해주소서. 주님, 저는 이제 제 능력 미치는 데까지 주님께서 저에 대해 지녀 오신 무한한 자비에 감사드리고 주님의 관대하심과 주님의 인내심을 찬미합니다.
저는 유년 시절, 소녀 시절 그리고 청년 시절인 스물다섯 살까지는 앞뒤를 못 가리는 철없는 사람으로 지내 왔습니다. 그때 저는 갈피를 못 잡을 정도로 말하고 행동하고 또 제 행위에 대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악에 대해 느끼게 된 자연적인 혐오감을 통해서 또는 저를 이끌어 온 선에 대한 매력을 통해서 또는 제 친척들의 야단법석을 통해서 주님께서 저에게 제 행위의 위험에 대한 경고를 보내주실 때, 저는 그 경고에 대해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이교도들 가운데 사는 이교도인 양, 제 하느님 당신께서 선행에 보답해주시고 악행을 벌하신다는 말을 전혀 듣지 못한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주님께서 저에게, 소녀 시절부터 즉 다섯 살의 어린이 시절부터 주님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 가운데 수녀원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심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아버지시여, 저는 이제 저의죄의 보속으로 주님의 사랑하는 아드님의 온갖 고난을, 곧 그분이 말구유의 짚풀 위에서 처음 울던 때부터 유년 시절의 무력함, 소년 시절의 허약함, 청년 시절의 고통을 참아내고 십자가에서 머리를 숙이며 큰 소리로 외치시면서 숨을 거두실 때까지의 고난을 바쳐드립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아버지시여, 제 게으름의 대신으로 외아드님께서 아버지의 옥좌의 정상에서 저희 땅에 내려오신 때부터 자신의 승리한 육신의 영광을 아버지의 면전에 바쳐드릴 때까지 지내오신 거룩한 생활을 그 완전하신 생각과 말과 행위와 함께 바쳐드립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손의 깊은 심연 속에 침몰해 들어가 주님의 지극히 뛰어난 자비와 함께 그 감미로운 사랑을 찬미하고 흠숭합니다. 자비의 아버지시여, 제가 이처럼 타락된 생활을 하는 동안 주님께서 저에 대해 지니신 생각은 고통의 생각이 아니라 평화의 생각이었고, 주님께서는 당신의 무수히 크나큰 은혜로써 저를 높여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그 은혜들 가운데 값을 헤아릴 수 없는 우정의 친밀함을 보태어주시고 여러 방법으로 천주성의 고귀한 장막인 아드님의 성심을 열어주시어 거기에서 기쁨의 온갖 보화를 풍부히 주셨습니다.
더욱이 주님은 죽을 때나 죽음 후에 저에게 은총의 선물을 주시리라는 확고한 약속으로 제 영혼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밖에 다른 선물을 제가 받지 않았다 해도, 그것만 생각해도, 제 마음은 산 희망으로 주님을 바랐을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