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우렌시오Laurentius 순교자는 현재의 스페인 우에스카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정확한 출생 연대는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한창일 무렵일 것이다.
라우렌시오는 학업을 마친 후 교황 식스토 2세로부터 로마의 일곱 부제 중 한 명이 되었으며 더욱이 교황의 인정을 받아 수석 부제가 되었다. 수석 부제로서 그의 임무는 교회의 재산을 관리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며, 교회 안의 잡다한 일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초세기 교회는 각 교구마다 일곱 부제, 곧 “일곱 봉사자”(사도 6, 1-6 참조)를 두었다. 교회에서 부제는 말씀 전례 중 서간과 복음을 봉독하고, 신자들의 봉헌 예물을 거두며, 기증자의 이름을 2매씩 판에 적어 미사 중에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주교를 도와 성체를 나누어주고, 성체를 병자의 집에 모셔가며, 기도를 선창하고, 주교의 허락을 받아 세례를 거행하고, 입교 지원자를 가르치며, 구마식을 행하고, 박해 때 탈락한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고유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제서품을 받기 전의 부제직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 사람들이 교회의 재산입니다”
로마 제국의 황제 발레리아누스(253-260년 재위)는 제국의 일치를 강화하고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257년 8월에 첫 번째 포교령을 발표했다. 모든 그리스도교 성직자들은 제국의 신들에게 제사를 바쳐야 하고, 지하 묘지에서의 집회를 금지하며 이를 어길 경우 유배형에 처한다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258년에는 첫 번째보다 훨씬 더 잔혹한 두 번째 포교령을 내렸다. 치프리아노의 서한에 그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원로원에서 보낸 답신에서 발레리아누스 황제는 주교·사제·부제는 즉각 엄하게 책벌하고, 원로원들과 상류 계급의 시민들, 그리고 로마 기사들 중 그리스도인인 경우에 그들이 갖고 있는 직분과 재산들을 몰수하라고 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재산을 몰수당한 뒤에도 스스로 계속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면 참수형에 처하라고 했습니다. 상류 계급의 기혼 부인들 역시 재산을 몰수한 다음 유배형에 처하고, 궁전과 황제를 위해 일하는 관리들 역시 이전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했거나 현재 신앙을 고백한다면, 재산을 몰수한 다음 쇠사슬을 채워 황제의 사유지로 보내도록 명했습니다.”
이렇게 잔혹한 포교령이 내려진 258년 8월 6일이었다. 교황 식스토 2세는 카타콤바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중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함께 있던 부제들 중 라우렌시오 부제를 제외한 다른 부제 4명과 함께 끌려갔다. 그때 라우렌시오 부제는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아버지, 불쌍한 자녀들을 두고 어디로 가십니까? 거룩하신 아버지, 보잘것없는 저를 버리고 어디로 가십니까? 당신은 미사 때 꼭 저에게 복사를 요청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디가 맞지 않으셔서 저희를 버리고 홀로 가십니까?”
이 말에 깊은 감동을 받은 교황 식스토 2세는 이렇게 그를 위로했다.
“내가 너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너는 남아서 더 힘껏 싸워 승리를 얻어야 한다. 나야 늙었으니 간단한 싸움으로 끝나겠지만 너는 아직 젊으니 더 빛나는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 4일 후에는 너도 나를 따라올 것이다.”
이날 제국의 관리들이 라우렌시오 부제를 함께 체포하지 않은 것은 교회의 살림살이를 맡고 있던 그를 통해 교회의 재산을 정리하여 몰수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초대 교회 공동체는 모든 신자들이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나누었다(사도 4, 32-37 참조). 이런 상황에서 라우렌시오 부제는 재빨리 교회 재산의 대부분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전해지는 일화에 의하면, 교황 식스토 2세가 라우렌시오 부제에게 교회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라고 명했다고 한다.
“평화를 사랑하는 착한 사제”라고 불렸던 교황 식스토 2세는 부제 4명과 함께 체포 당일에 처형되었다.
교황의 말대로 라우렌시오 부제도 체포되었다. 총독은 그가 내놓은 교회 재산 목록을 보고는 재산의 행방을 추궁했다. 그러자 라우렌시오 부제는 전 재산을 정리하겠으니 3일의 시간을 달라고 청하여 나머지 재산마저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약속된 날 8월 10일이었다. 라우렌시오 부제는 가난한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관청으로 갔다. 또다시 총독은 재산을 내놓으라며 그를 윽박질렀다. 그러자 라우렌시오 부제는 자신이 데리고 간 가난한 사람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들이 교회의 재산입니다.”
“이제 다 익었으니 잡수시오”
라우렌시오 부제는 총독과 관리들의 격분을 샀다. 그에게 당했다는 생각에 분노한 그들은 라우렌시오 부제에게 온갖 고문을 가한 뒤 그의 옷을 벗기고 장작불 위의 석쇠 위에 눕혔다. 서서히 구워 죽이는 형벌이었다. 하지만 살이 타들어가는 중에도 라우렌시오 부제는 미소를 지으며 총독에게 말했다.
“이쪽은 다 익었으니 뒤집으시오.”
한참 뒤 라우렌시오 부제가 다시 말했다.
“이제 다 익었으니 잡수시오.”
그런 다음 숨을 거두었다. 생명이 사라진 라우렌시오 부제의 몸에서는 향기가 솟아났다. 시인 프루덴티우스에 따르면, 라우렌시오 부제는 불 속에서 정신을 잃기 전에 로마의 회개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했다고 한다. 또한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거룩한 죽음을 맞은 라우렌시오 부제의 모습을 지켜본 많은 원로원과 군인들 그리고 로마의 시민들이 회개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한다.
거룩한 순교자 라우렌시오 부제는 로마 성벽 밖에 묻혔다. 로마의 황제 콘스탄틴 대제(306-337년 재위)는 라우렌시오 부제를 기리며 그의 무덤 위에 성 라우렌시오 대성당을 건립했다. 이 성당은 로마의 주요한 일곱 성당 중의 하나가 되어 수많은 로마 순례자들의 방문을 받고 있다.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에 대한 공경은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그의 순교일은 4세기 초부터 순교자 축일이 되었다. 라우렌시오 부제는 로마의 여러 순교자들 가운데 가장 공경 받는 순교자가 되었으며, 로마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성인들이 많지만 그는 로마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라우렌시오 부제의 거룩한 순교는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에서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화가 프라 안젤리코는 바티칸의 니콜라스 경당에 라우렌시오 부제의 생애와 순교를 작품으로 남겼다. 스페인 왕 필립은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세운 수도원의 경당에 라우렌시오 부제의 모습을 그림으로 새기도록 했다. 이밖에도 여러 지역에서 라우렌시오 부제의 생애와 순교를 예술 작품으로 남겨 보존하고 있다.
우리 교회는 8월 10일을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로 지내면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고, 순교의 고난을 받아들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기뻐하며 올라간” 복된 라우렌시오를 기린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2코린 9, 9) 하는 성경 그대로의 삶을 보여준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를 기억하며 기린다.
교회는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를 생전에 그가 섬겼던 가난한 사람들의 수호자로, 요리사의 수호자로 세웠다. 그의 문장은 석쇠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의 봉사자였습니다”
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에 이렇게 그를 칭송했다.
“오늘 로마 교회는 복된 라우렌시오의 개선을 기념하고 경축합니다. 그는 성난 세상을 짓밟고 세상이 던지는 유혹의 미소를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영혼을 노리는 마귀를 패배시켰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라우렌시오는 로마 교회의 부제직을 수행하고 거기에서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의 봉사자로 일하다가 마침내 거기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복된 사도 요한은 주님 만찬의 신비를 다음과 같이 명백히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신 것처럼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우리의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형제 여러분, 라우렌시오는 이 말씀을 잘 이해했습니다. 이해한 것뿐만 아니라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는 주님의 식탁에서 주님을 받았기에 그 보답으로 자기 자신을 주님께 제물로 바쳐 드렸습니다.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사랑했고 죽음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았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들도 그리스도를 참으로 사랑한다면 그분을 본받도록 합시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보다 그분께 대한 사랑의 더 훌륭한 증거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본보기를 남겨 주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말씀으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는 이들을 위해서만 고난받으시기를 원하시고, 그분의 고난은 그런 사람에게만 효과를 미친다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거룩한 순교자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본받아 피를 흘리기까지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순교자들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순교자들이 지나간 후에도 다리는 끊어지지 않았고 그들이 마신 샘도 마르지 않았습니다.
형제들이여, 주님의 정원에는 여러 종류의 꽃들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순교자들의 장미꽃만이 아니라, 동정녀들의 배합꽃도, 기혼자들의 담쟁이꽃도, 과부들의 제비꽃도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소명에 대해 실망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이를 위해 고난당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바라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피를 흘리고 고난당함으로써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도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여, 여기에 본받을 그분의 모범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순종하는 분이 되셨습니다.’ 왜 당신은 오만합니까?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후 승천하셨습니다. 우리들도 거기까지 그분을 따라갑시다. 사도 바오로가 하는 말씀을 잘 들읍시다.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서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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