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포르의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Louis Marie Grignion de Monfort) 성인은 1673년 1월 31일 왕실 변호사였던 아버지 요한 그리뇽과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랑스의 몽포르-라-깐에 있는 ‘법률가들의 거리’에 위치한 커다란 이층집에서 태어났는데 그 건물은 지금도 남아있다. 그는 18명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으며 맏이가 어려서 죽었기에 맏이 노릇을 했다. 후일 그의 형제들 중에서 세 명은 사제, 네 명은 수녀가 되었다. 그리뇽 일가는 어디를 가든 칼을 차고 다닐 수 있는 특권이 있었지만 그는 칼 차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또 남다른 이름을 갖는 것을 원하지 않아 자신의 이름을 루도비코 그리뇽이 아닌 몽포르의 루도비코로 정했다. 몽포르는 그가 태어난 고장의 이름이며, 견진성사 때 성모님의 이름 마리아를 세례명 루도비코에 덧붙였다.
루도비코는 1685년 렌에 있는,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성 토마스 아 베케트 중학교에 입학해서 1693년까지 수학했다. 이때 이미 그는 신심이 깊은 소년이었으며 사제가 되어 영혼들을 위해 일하는 것을 소망했기에 학우들이 그의 깊은 애덕과 기도에 대한 열성에 깊은 감명을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렌에 온 지 몇 년이 지나서 그의 아버지가 사업을 하기 위해 가족들을 렌으로 데려왔는데 이것은 하느님의 섭리였다. 아버지와의 사업관계로 렌에 온 ‘드 몽띠뉘’라는 여성을 통해 당시에 ‘전 세계 모든 신학교의 표본’이었던 성 슐피스 신학교에 관해 알게 되었다. 더욱이 그녀는 그가 신학교에 진학할 경우 필요한 모든 후원을 약속해주기도 했다. 그래서 1693년 가을에 루도비코는 파리를 향해 길을 떠났다.
렌에서 파리까지
20세 청년 루도비코는 렌에서 파리까지 350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서 갔다. 묵주를 손에 들고 “순례자처럼” 여행하기로 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여행 경비로 준 돈은 길에서 만난 불쌍한 이들에게 모두 주었을 뿐 아니라 입고 있던 옷마저도 벗어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구걸로 끼니를 때웠고 도보 여정 중 거의 매일 비를 맞아 목적지에 다다랐을 땐 거리의 거지와 다름없는 행색이었다. 하지만 렌에서 파리까지 이어진 그의 여정은 사제직만이 아닌 완덕을 향한 거룩한 순례였다. 그는 그 여정에서 그때까지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모든 것을, 그의 전부를 내버렸다. 그는 길에 나선 지 열흘이 지나 드디어 목적지인 파리로 들어서는 마을의 입구 자갈길에서 무릎을 꿇고는, 이후로는 모든 것을 성모님께 의지하며 가난하게 살겠다고 맹세했다 한다.
파리에 도착한 후 1695년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는 먹고 자는 것에서부터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는데, 당시에 프랑스는 계속 전쟁을 치르고 있어 모두가 어렵고 힘든 시기였고 그에게 도움을 약속했던 드 몽띠뉘도 거의 모든 재산을 잃어 약속을 지키기 힘든 지경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이 자네를 도울 수 없다면, 죽은 사람이 도와줄 걸세.”라는 어느 신부의 격려처럼 그는, 당시에 프랑스에서 모두가 기피하는 가장 힘든 일이었던, 밤새 시체를 지켜주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영성의 기초를 쌓다!
드디어 1695년 성 슐피스 신학교 입학이 허락되었다. 이 신학교는 쟌 쟈크 올리에(1608-1657) 신부에 의해 1648년 설립되었는데 올리에 신부는 자신을 성모님의 노예, 성모님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노예로 여기며 노예 신분의 상징으로 늘 목에 은줄을 걸고 다녔다. 그에게서 성모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별개가 아니었으며, 우리는 성모님을 통해 예수님께로 가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 신학교에서 수학하는 모든 신학생이 그와 같은 견지에서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하도록 했는데 설립자의 이런 영성이 신학생 루도비코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은 분명하다.
한편 신학생 루도비코는 기도방을 관리하고 도서관 사서를 대신하는 소임을 맡았다. 그리하여 읽고 싶었던 책, 그중 하느님의 지혜에 관한, 십자가에 관한, 묵주기도에 관한, 마리아의 노예에 관한, 마리아에 관한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는데 “마리아께 대한 신심을 다룬 책은 거의 모두 읽었다.”라고 그 시기를 표현했다. 또한 그는 그 시기에 성모님 안에서, 성모님을 통해 자신을 예수님께 봉헌했으며 이 봉헌에 관해 이렇게 기록해두었다. “마리아께 대한 완전한 봉헌은 그리스도와의 합일을 의미하며 완덕에 이르는 손쉽고, 빠르고, 완전하고, 안전한 길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완덕은 이런 합일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완덕은 그리 어려운 길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을 때 이 길이 열렸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마리아의 길은 평탄하다. 물론 거기에는 이겨내야 할 고난과 어려움이 있겠지만 우리의 어머니께서 언제나 가까이 계시면서 어둠을 밝히시고 의혹과 두려움을 씻어주시며 모든 일에 힘과 도움을 주신다. 예수님께 이르는 동정녀의 길은 장미꽃 만발한 고른 땅이다. 이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 그분과 일치하는 완전한 길이다. 그것은 마리아가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가장 온전하고 가장 순결하며 가장 성스럽기 때문이다. 이 길을 통해서만 그 지존하시고 전지하시고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분에게 다가갈 수 있다. 그분은 신성을 조금도 잃지 않으시고 비천한 종인 마리아를 통해서 완전하고 신비스런 방법으로 우리에게 강림하셨다. 따라서 극히 미소한 우리들도 마리아를 통해서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완전하게 지존하신 분에게로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루도비코는 자신의 봉헌에 의미를 더하기 위해서 세례서원을 갱신했다. 자신을 ‘마리아의 종’, 그리고 ‘마리아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어느 주석가의 표현대로, 그는 사도 요한처럼 마리아를 자기 집에, 자신의 어머니로 모셨다. 또한 그는 동료 신학생들에게도 이런 신심을 전해주었으며, 일명 ‘마리아의 종들의 모임’을 신학교 장상들에게서 허락받아 이끌었다.
<1948년 12월 8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제막식을 가진 성 루도비코 성상>
“착한 사제” 루도비코
1700년 6월 5일 루도비코는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의 첫미사에 참례했던 이는 이렇게 증언했다. “나는 루도비코 신부 옆에 서 있었는데 그에게서 천사를 보았다. … 그의 천사 같은 모습에 놀란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서품 후 루도비코 신부를 기다리는 십자가는 매우 컸으며 그가 마셔야 할 잔은 무척 썼다. 그는 캐나다나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며 죄인들을 위해서 일하고 마리아께 대한 신심을 전파하고 싶었지만 허락되지 않았고 그에게 따로 맡겨진 사목은 없었다. 어느 전기 작가는 이 당시의 루도비코 신부를 “바짝 메마른 길바닥에 하느님의 축복을 부어주려고 어디론가 흘러가는 비구름”에 비유했다. “비참할 정도로 야위고 먼지투성이에 누더기를 걸치고 있으면서도 대담하고 늠름한” 루도비코 신부는 병원 사목과 선교 활동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했으며 온갖 냉대와 굴욕과 조소를 받아야 했다. 이는 1716년 그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1705년에는 ‘몽베르나즈’라는 지역에서 사목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지독하게 가난하고 심성도 거칠었으며 거리는 악취가 진동했다. 그곳에서 그는 창고처럼 보이는, ‘양 우리’라는 이름의 댄스 홀을 개조하여 자신이 직접 조각한 성모상을 모셨다. 그리고는 미사를 봉헌했으며 하루에 몇 시간씩 고해소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묵주기도의 은총을 가르쳐주고 이것에 자기 사명의 성공을 걸었다. “천상의 지혜를 우리 안에 모셔오는 데 기도문을 외우고 신비를 묵상하는 묵주기도보다 더 힘있는 것은 없다.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은 마리아 안에서,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님을 찬미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또한 그는 그곳 신자들이 “평생토록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하여, 마리아의 손을 빌어 예수 그리스도께 저를 온전히 바칩니다.” 하며 자신을 봉헌하도록 인도했다.
1년 후 그가 떠난 다음 그 지역의 모든 이들이 매일같이 묵주기도를 바치게 되었음은 물론이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양 우리’는 성당이 되고 그가 설립한 ‘지혜의 딸들’ 수녀들이 그곳에서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다. 이곳 외에도 그는 어디를 가든 묵주기도를 전하고 복음을 힘차게 전파하면서 신자들의 열성을 이끌어냈으며, 사도직 단체를 조직하고 폐허가 된 성당이나 기도소를 수리했다.
1706년에서 1716년까지
1706년 봄 그는 “한 손에 지팡이를, 다른 손엔 늘 그렇듯 작은 성모상을 들고 십오 단 묵주를 허리에 걸고는” 로마를 향해 걷기 시작해서 6월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때 교황의 고해신부를 우연히 만나게 되어 그의 주선으로 교황 클레멘스 11세를 알현할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자신의 활동과 꿈과 체험 등을 모두 전하고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자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로 돌아가서 일하시오. 그곳은 신부님이 몸 바쳐 일할 수 있는 넓은 들판과도 같습니다. 얀세니스트와 싸우시오.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시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세례 때의 서약을 쇄신하도록 가르치시오. 그리고 항상 주교에게 순명하시오.” 교황은 그에게 ‘교황 파견 선교사’(Missionary Apostolic)라는 칭호를 주고 그가 가지고 간 십자가를 축복해주었다. 또한 임종 시에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뉘우치고 예수님과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며 이 십자가에 친구하는 사람은 전대사를 받게 했다.
알현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그는 대사의 특은을 받은 십자가를 자신이 짚던 지팡이에 매고는 즉시 프랑스로 향했다. 날씨는 덥고 발은 껍질이 온통 벗겨져 있었지만 그는 신발을 벗어들고 맨발로 걸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교황이 부여한 특권으로 프랑스 전역을 걸어 다니며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 십자가와 묵주기도, 마리아께 대한 참된 신심 등을 열정적으로 전했다. “루도비코 신부는 맨발로 걸어 다니면서 7개 교구를 복음화시켰다. 그는 가장 반항적인 사람을 복종하게 하고 냉담한 사람들의 가슴에 신앙의 불을 지르고 무딘 삶을 부드럽게 만들면서 백 개 이상의 본당을 변화시켰다. 그는 마음을 움직이는 이 선물을 전하기 위해 많은 순례를 했고 그의 기도를 하느님께서 잘 들어 허락하셨다”(프랭크 더프, <The Monfort Way>에서). 특히 그는 세례의 약속을 갱신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정신을 새롭게 하라는 임무도 잊지 않았다. 즉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니고, 그분의 뒤를 따르고, 그분의 나라에 봉사할 책임을 지게 하는 세례의 위대함과 요청을 일깨워주는 것이었는데 이는 그의 저서에서도 강조되어 있다.
그는 사제들과 수사들의 마리아 단체인 ‘몽포르의 선교사들’, ‘지혜의 딸들 수녀회’, ‘성 가브리엘 교육 수사회’를 설립하고 신심회를 조직했다. 또한 많은 저서들을 남겼는데 1703년에서 이듬해까지 그의 첫 저서이며 “우리에게 루도비코 성인의 영성을 전체적으로 전해주고,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의 더 정확하고 더 포괄적인 개념을 주는” <영원한 지혜에 대한 사랑>이 완성되었다. 이어서 그는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마리아의 비밀>, <묵주기도의 비밀>, <십자가의 벗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비롯한 많은 저서와 강의록, 편지, 규칙서, 메모 등을 남겼다.
1716년 4월 28일 그는 43세의 젊은 나이에 선종했다. 한 손에는 십자가를, 다른 손에는 성모상을 잡은 채였다. 1947년 7월 20일 교황 비오 12세는 “그의 모든 사도직 임무의 가장 큰 힘과 예수님을 위해 영혼들을 끌어당기고 정복한 가장 주된 비결은 마리아께 대한 신심이었다.”라고 하며 몽포르의 루도비코 신부를 성인의 반열에 올렸다.
마리아의 시대를 알린 예언자
1948년 12월 8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루도비코 성인의 성상 제막식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떼레스키니 추기경은 루도비코 성인을 이렇게 소개했는데 이는 이 성인이 우리 교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잘 보여준다. “…성 루도비코는 마리아 신심의 뿌리를 아주 깊이 탐구하였고 그 신심의 범위를 훨씬 넓혀주었기에 마리아의 모든 현대적 발현을 알리는 예언자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곧 그는 루르드에서 파티마에 이르기까지, 또한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교리 결정에서 레지오 마리애까지의 모든 마리아 발현과 마리아 사도직을 사실상 예언해주신 것이다. 그는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예언자가 되었으며, 하느님의 동정 성모가 때가 차매 당신의 티없으신 성심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가져다줄 인류의 구원을 알리는 선구자가 되었다.”
루도비코 성인이 마리아에 관한 신학과 영성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에게서 예수님과 마리아는 분리되지 않았으며 ‘마리아 안에 살아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기 위해 마리아를 통해야 한다는 것은 그의 핵심 영성이었다. 하느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는 마리아를 통해서 오시기 때문이었다. “하느님의 지혜를 얻고 보존하는 모든 방법 중에서 가장 중요한 방법이며 모든 비결 중에서 가장 훌륭한 비결은 마리아께 대한 참된 신심이다”(<영원한 지혜에 대한 사랑> 제17장에서).
루도비코 성인의 예언은 적중했다. “예수께서는 마리아를 통하여 이 세상에 오셨고 역시 마리아를 통하여 이 세상을 다스리고자 하신다.”로 시작되는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에서 볼 수 있는 ‘마리아의 세기’, ‘마리아의 시대’ 예언은 마리아의 발현을 통해서, 레지오 마리애를 비롯한 많은 단체를 통해서 확인되어졌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