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헌의 그리스도교적 의미는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자발적으로 어떤 대상을 바치는 행위 또는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행위이다. 즉 봉헌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하느님의 것으로 인정하는 행위로서 이때 봉헌의 대상, 즉 봉헌을 받는 이는 하느님이시다. 봉헌의 대상은 오로지 하느님뿐이며 하느님만이 우리의 전적인 봉헌을 받으실 권한을 갖고 계신다. 하느님은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봉헌은 바로 이 진리를 인정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다시 돌려드리며 그분께로 돌아가는 행위이다. 또한 하느님께의 완전한 종속을 인정하고 하느님을 모든 것 위에 섬기는 일이다. 따라서 봉헌은 자연적이고 세속적인 용도가 아닌 하느님을 공경하고 섬기며 하느님께 봉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구약의 이스라엘인들의 삶은 바로 이 봉헌의 삶이었다. 그들은 곡식이나 양, 염소, 비둘기 등 동물을 제물로 바쳐 죄를 씻고 성화되고자 했으며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느님께의 헌신과 순명을 다짐하였다.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 하느님께 바치고(느헤 12, 27-43), 한나는 아들 사무엘을 하느님께 바쳐 사무엘의 한평생을 하느님께 맡겨드렸다(1사무 1, 21-28).
신약시대에 와서 최초의 봉헌은 성모님과 성 요셉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최초의 봉헌물은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들은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루카 2, 22).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시어, 많은 사람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당신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쳐 죄를 없애심으로써 봉헌의 완전한 모범이 되셨고 봉헌의 의미를 최고조로 드높이셨다. 그분의 강생 전인 구약의 모든 봉헌은 신약의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봉헌의 예표였으며, 그분의 승천 이후의 모든 봉헌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더욱 숭고한 빛을 띠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모든 이가 거룩하게 되었고 이제는 번제물과 속죄 제물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성모님께의 봉헌은 왜?
봉헌의 대상은 오직 하느님뿐이시다. 그럼 성모님께 봉헌한다는 말은 과연 타당한가? 성모님께 봉헌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성모님은 하느님의 어머니시며 천상 여왕으로서 그리스도의 우주적 권능에 신비적으로 참여하고 계시며 그 영역에는 모든 인간들도 포함된다. 따라서 우리는 성모님께 봉헌할 수 있으며 성모님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의 신앙생활에 더욱 큰 성화를 가져다주실 수 있기에 성모님께 봉헌한다는 말은 타당하다. 그리고 이 봉헌은 그리스도께의 봉헌과 중복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님은 구별되는 두 줄기를 이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개하는 여인은 중개자와 병립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리스도의 중개에 종속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성모님께 봉헌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봉헌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일생을 통해 "성모님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로"를 주창하며 십자가와 성모님에 대한 신심을 전한 몽포르의 루도비코 성인(1673-1716)은, 하느님께 봉헌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뛰어난 주형이며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님을 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성모님께 봉헌하는 것은 "성모님의 손을 거쳐서 예수 그리스도께 봉헌되고 그분께로 나아가는 가장 완전하고 안전하며 빠른 길"이라고 강조하였다.
"우리의 완덕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과 일치하고 그분께 봉헌되는 데 있다. 그러므로 모든 신심 중에서 가장 완전한 신심은 그리스도를 완전히 따르며, 그분과 일치하고 그분께 자신을 봉헌하는 신심이다. 그런데 모든 조물 가운데 마리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가장 친밀하게 일치하셨다. 따라서 모든 신심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예수님께 가장 잘 봉헌하게 하고 친밀하게 일치시키는 신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 대한 온전한 신심이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봉헌하면 할수록 예수 그리스도께도 봉헌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완전한 봉헌은 마리아께 전적으로 봉헌하는 것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120항).
20세기에 들어 성모님은 파티마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 발현하셔서 당신의 티없는 성심께 대한 봉헌을 간곡히 호소하고 계신다. 20세기의 초엽인 1917년 파티마에 발현하셨을 때에는 원죄에 물들지 않은 당신의 티없는 성심을 직접 보여주시면서 티없는 성심께 대한 신심과 봉헌을 호소하셨다. 성모님은 "예수께서는 세상에 내 성심에 대한 신심을 세우기를 원하고 계신다. 내 성심을 공경하는 사람에게 나는 구원을 약속한다."고 하시면서 당시 공산화 과정에 있던 러시아를 구하는 방법으로 "전 세계 모든 주교들과의 일치 안에서 러시아를 내 티없는 성심에 봉헌하여라."고 요청하셨다. 1984년 3월 25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모님의 요청이 온전히 채워지면서 그 이후 소련을 포함한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이 무너지게 되었다.
성모님께의 봉헌은 하느님께 봉헌되기 위한 가장 완전한 방법인 동시에 성모님의 티없으신 성심께 대한 가장 완전한 신심행위이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봉헌을 받으셔서 당신 아드님과의 완전한 일치 안에서 그러나 그분께 종속되어 "은총의 질서 안에서 우리의 어머니의 자격으로"(교회 헌장 61항)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의 생활에 모성적으로 관여하신다. 그리고 우리의 봉헌을 당신의 봉헌과 일치시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가능케 해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다. "성모님께 봉헌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이르는 길을 통과하는 것으로서 성모님은 그리스도께 이르는 길이시다."라고. 따라서 성모님을 통하여, 성모님 안에서, 성모님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바치면 바칠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결국 내 티없는 성심이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 그 승리를 매 순간 자신 안에서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모님께의 봉헌의 핵심이며, 주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
